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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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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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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사는 가까이에서 보니 나이가 들었어도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거기다가 사십대 초반의 농익은 연륜이 무언지 모르게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똥철과 윤여사,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일까. 서로 말을 터는 것 같기도 하고, 않는 것 같기도 한데...’
하림은 혼자 추측을 해보고 상상을 해보았다.
하긴 동철이 옆에는 언제나 여자들이 끊어지지 않았다. 생긴 외양도 그럴 듯 한데다, 뻥이 섞인 쉼 없는 언변, 그럴듯한 개똥철학, 그리고 빈털터리 개털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출입한답시고 빈티라곤 찾아볼 수 없게 늘 갖춰 입는 입성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기말로는 의원회관 수위가 촉탁에게 경례를 붙이는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고 했다.
아무튼 그가 윤여사라는 여자를 끌고 나온 것은 이유가 있을 터였다.
‘분명히 누군가 만날 일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이 여자란 말인가. 이 여자를 정말 자기에게 소개시켜주려고 데려온 걸까.’
하림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을 굴리면서 한편으론 또 얼토당토 않는 기대감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혜경이랑 결혼을 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런저런 여자랑 사귀어보는 것도 흠이 될 건 없지 않겠는가, 하는 가당찮은 자기 합리화까지 하고 있었다.
‘나이가 뭐 대순가. 요즘은 누나 같은 여자랑 사귀는 게 유행이라는 데....’
하림이 그런 쓸모없는 생각을 굴리고 있는 동안 불판 위에 고기가 놓여졌고, 소주잔이 채워졌다.
“자아, 우리, 위하여, 짱 한번 합시다! 첫잔은 원샷이야!”
동철이 술잔을 들어 먼저 윤여사과 마주치고 다음에 하림이랑 마주쳤다.
날카롭고 차가운 소주의 기운이 빈속의 창자를 비수처럼 훑으며 내려갔다.
맛있었다.
모든 술은 첫잔이 첫 키스처럼 달콤해야 하는 법이다. 첫잔이 맛이 없으면 그 술판은 내내 재미없게 마련이었다. 낯선 여자 때문일까, 오늘은 괜찮은 출발이었다.
“어때? 난 이런 낡은 데가 좋아. 이런 델 오면 비로소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거든.”
첫잔을 원샷한 동철이 입가에 호기로운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주위는 이미 술 취한 사람들로 시끄러웠고,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로 어수선한 게 술을 마시지 않아도 저절로 취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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