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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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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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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보았던 혜경이 아버지 대머리 영감이 떠올랐다.
나이가 많아서 혜경이 엄마를 만나 뒤늦게 재혼을 한 혜경 아버지는 그때 이미 할아버지였다. 작은 목욕탕을 하고 있던 영감은 하림이 학교 가는 길에 마주쳐 인사를 하면,
“어이, 꼬마대장 워디루가? 학교루가?”
하며 억센 이북 사투리로 말하며 빙긋이 웃고는 했다.
혜경은 하림의 초등학교 때 친구였다. 혜경이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오래되었다.
그 사이 동묘 앞 길 한쪽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하림은 달리 할 일이 없어 그쪽으로 슬슬 걸어가 보았다. 제법 넓은 공터에 머리에 수건을 둥쳐 맨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웃통을 벗고 서서 방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바로 쇠로 만든 정(釘)을 자기 가슴에다 대고 구경꾼 중의 ‘아무나’가 나와 햄머를 힘껏 휘둘러 박게 하는 시범이었다. 그의 뒤에는 북과 전자오르간, 마이크 장치를 앞에 둔 남녀 각설이 한 쌍이 시끄럽게 연주를 하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진하게 분장을 한 남자 각설이는 가까이에서 보니 깊게 패인주름살이 구경꾼으로 모인 영감들만큼이나 늙어보였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요즘은 좀체 보기 드문 차력 시범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구경꾼 중에서 ‘아무나’ 로 불려나온, 콧수염을 기른 오십줄의 사내가 정의 머리를 향해 햄머를 날리는 중이었다.
벌써 몇차례 햄머를 날렸는지 콧수염의 이마에 땀이 배여 있었다.
그는 이번엔 정말 인정사정 볼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를 악물고 “어잇!” 하는 소리와 함께 차력사 사내가 가슴에 대고 있는 정의 머리를 향해 힘껏 햄머를 날렸다.
그와 함께 “딱!”, 하는 둔탁한 소리와 차력사의 “엇!” 하는 기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뒤로 버티고 있던 차력사의 발이 약간 휘청하고 밀리는 듯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차력사의 가슴을 꿰뚫어야할 정의 끝은 보기좋게 튕겨나오고 말았다. 차력사는 아무 상처도 나지 않고 다만 붉은 기만 약간 감돌 뿐인 가슴을 앞으로 자랑스럽게 내어밀었다. 콧수염은 더 이상 못하겠다는 듯이 햄머를 던져두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다소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뒤로 물러 나왔다. 여기저기 웃음소리와 함께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정 박는 시범이 끝나고 나자 여자 각설이는 엉덩이를 흔들며 전자오르간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남자 각설이는 북을 쿵쿵 울리며 걸직하고 쉰 목소리로 사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구경이 아닙니다. 남원 원주 진주 돌아서 충주 청주 안동 밀양 돌고 돌아 일년에 따악 한번 찾아오는 희대의 차력사 박팔갑산. 전설의 레슬러 역도산, 박치기 왕 김일의 유일한 수제자. 우리의 박팔갑산 선생이 이제 여러분들 앞에 보여드릴 다음 차례 차력시범, 자, 얘들은 가거라, 가서 엄마 젖 주물러 드려라이, 저놈이 가만히 보자 하니, 니가 바로 그날 밤 니 애미랑 만들어논 내 새끼 같기도 헌디, 발구락이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그래, 고건 이따 살펴보기로 하구, 자아, 다음 시범을 보이기 전에 오늘 선보이는 아릿다운 가수는 방금 동남아 공연을 마치고 마악 귀국한 존설의 트롯트 가수 주현미 아니고 주현아 양, 여러분께 소개 올립니다.”
늙은 남자 각설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자 각설이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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