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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백창일의 '배추흰나비' 중에서

시계아이콘00분 33초 소요

슬퍼하지 마라/어제의 네 비정을 슬퍼하지 마라/애초 불타는 지구에 태어난 한 가시내가/어찌 다 꽃이었겠느냐/(......)/배추흰나비도/한때는 한 마리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해충에 지나지 않았다/그 벌레 한 마리가 나비가 되어/꽃씨를 뿌려놓고 하늘로 날아간 오늘/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보라/배추흰나비보다 눈이 깊은 사람아,/모든 사랑은 다 첫사랑이다


■ 눈 뜬 뒤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삼는 새들은 출생의 비밀을 의심하지 않는다. 첫사랑은 육체적 조건이 아니라 영혼이 깃드는 찰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를 전혀 닮지 않은 어미의 어깨에 날아와 귓볼에 등을 부비는 저 선한 맹목에게서 우린 첫사랑의 힘을 배운다. 그러나 덧없이 사라지는 것. 처음의 자국 위에 더 짙고 심각한 자국들이 덧찍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저 원형을 향해 우린 첫사랑이라고 부르지 말자. 그보다는 어쩌면 최후의 살냄새일 듯한 간절한 부드러움의 기억, 이제 더 이상 이승의 사랑은 못할 것 같은 내리막길에 불현듯 떠오른 그리운 생기를 우린 첫사랑이라 불러야 한다. 오후 네시의 와인카페, 오래 준비한 마음의 냅킨을 깔고 가만히 포크와 나이프를 놓는 그 마음의 환한 여백을.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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