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영준 기자]배우 설경구가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난다. 영화 '타워'(감독 김지훈)를 통해서다. '타워'는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기를 당하고 촬영도 미뤄졌다. 설경구는 "기다린 것 까지 하면 2년이 흘렀다. 27개월 만에 개봉이다. 이거 기다리다 잠시 다른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고 개봉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설경구의 고생은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크랭크인에 들어갔지만, 영화를 위해 그 힘들다는 소방훈련을 받아야했다. 또 '타워' 속 불을 끄는 장면은 한 여름에 촬영이 이뤄졌다. 온 몸을 적셔야 하는 대용량의 물이 동원된 장면은 싸늘한 바람에 슬슬 몸이 떨려오는 10월 말 야외에서 촬영됐다. 설경구는 당시를 떠올리며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좌우로 재빨리 흔들었다.
설경구는 '타워'에서 소방대장 강영기로 분해 불과 사투를 벌인다. 2009년 개봉해 1130만 관객을 모은 '해운대'에 이어 두 번째 재난영화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타워' 출연 이유를 묻자, 설경구는 "사실 영화 장르에는 별 관심 없다"고 운을 뗐다.
"김지훈 감독은 학교 후배예요. 김 감독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타워' 때문에 만났죠. 김 감독이 자기는 현장에 나오면서 작품 고민도 하지만, 오늘은 무엇으로 배우들을 웃길까 고민한대요. 그 말이 좋았고, 고마웠어요. 그리고 영화 '열혈남아' 찍을 때 현장에 왔었다는데, 제가 못 만났대요. 제가 뭐라고. 되게 창피하고 미안했어요.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작업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 술 한 잔하고 집에 들어가다가 '내가 책(시나리오) 보면 아냐? 할게'라고 말했죠. 그리고 나서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설경구의 말에서 왠지 모를 인간미가 느껴졌다.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말에서 절로 '의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설경구는 "그게 인연인 것 같다"는 말로 애써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타워'에는 설경구와 함께 주연을 맡은 또 다른 배우가 있다. 어느 영화든 남배우가 있다면, 여배우가 등장하는 법. '타워'에는 청순함의 대명사 배우 손예진이 출연한다. 그런데, 이 손예진의 캐스팅 비화가 아주 재밌다. 김지훈 감독과 설경구가 합공(?)에 나서 손예진 캐스팅을 성공시켰다는 것.
"(손)예진이 분량이 진짜 적었어요. 그래서 내가 '미쳤냐? 걔가 하겠냐?'고 말했죠. 그래도 김 감독이 일단 시나리오를 주고 보자고 하더라고요. 한 마디로 쪽 팔렸죠. 어느 날 손예진 소속사 대표님을 만난다고 하면서 저 보고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마침 우리 집 바로 뒤이기도 해서 같이 갔죠. 우리가 대표님에게 1차를 마치고 2차 가겠냐고 물었어요. 2차를 간다면 희망이 있는 거였죠. 그런데 (2차를) 갔어요. 그래서 결국 대표님이 예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너 이거 해야될 것 같아'라고 말씀하셨대요.(웃음) 그런 적이 없으셨던 분인데."
이후 김 감독과 설경구는 영화 '오싹한 연애'를 찍고 있는 손예진을 찾아갔다. 마침 술자리가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손예진에게 설경구는 "너 '타워' 찍는다며? 소문 다 났어"라고 말했다. 김지훈 감독과 설경구의 합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손예진의 출연이 결정되면서 시나리오도 결국 수정됐다. 설경구는 "손예진에게 고맙다. 촬영 현장에 오는 걸 '소풍 간다'고 표현하면서 즐겁게 했다. 그렇게 여러 명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인만큼 촬영 중 아찔한 사고 위험의 순간도 있었다. 설경구는 촬영 중 뜨거운 불보다 물건을 태우면 나오는 유독가스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촬영 내내 두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또 대규모 물 신 촬영 도중 특수효과 팀장이 목숨을 잃을 뻔 한 적도 있었다. 설경구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직접 촬영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말 특수효과팀장 영면할 뻔 했어요. 그날 불 끈다고 물을 쓰는데, 고양시에 있는 워터슬라이드에서 촬영 했거든요. 이층 철제 난간에 배우들이 있었고, 양쪽 위에서 물을 쏴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사라진 거예요. 촬영 감독도 몰랐죠. 찾아보니 7m 밑에 떨어져 있더라고요. 특효팀장이 물에 휩쓸리면서 손예진과 부딪힌 뒤 떨어진 거예요. 다행히 밑에는 허리까지 찰 정도로 물이 담겨 있었죠. 제가 채우라고 했던 거예요. 만약 그 물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죠. 메이킹 영상이 그 장면을 포착했더라고요. 나중에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으레 신작 영화가 개봉을 하면 주연 배우들이 홍보를 위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마련. 설경구에게 예능 프로 출연 계획을 묻자 순간 표정을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예능 프로에 나가면 홍보가 안되요. 제 말은 인터넷 방송용이거든요. 예의를 갖춰야 되고, 말도 조심해야 되고. 전 쌍스러운(?) 말을 못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영화 '그놈 목소리'때 MBC '놀러와'에 출연했는데, 영화 얘기 잠깐 하고 입을 꽉 다물고 있었어요. 웃기만 하다 끝났죠.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유재석에게 '진짜 대단하다'고 말해줬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제 막 인터뷰를 마친 손예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설경구는 손예진과 스케줄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과시했다. 그러다 문득, 최근 활동이 뜸한 설경구의 아내 배우 송윤아의 근황이 궁금했다.
"아직 구체적인 활동 계획은 없는데, 아마 본인도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화연 누나 보면 너무 좋아요. 저도 '사랑과 야망' 출연 당시 팬이었거든요. 예쁜데 연기까지 잘해요. 누나는 안 쉬시더라고요. 저는 일하는 여자가 멋있다고 생각해요."
설경구는 마지막으로 "영화를 많이 봐 달라"는 인사를 건네며 매우 쑥스러워했다. 그는 "'타워'는 특별한 관객층을 겨냥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모든 인간 군상들이 담겨 있다"며 "아마 추운 겨울 영화를 보면 왠지 엄마 생각이 나는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타워'는 108층 초고층 빌딩 타워스카이에서 일어난 최악의 화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설경구와 함께 배우 김상경 손예진이 주연을 맡았다. 오는 25일 개봉.
장영준 기자 star1@
사진=송재원 기자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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