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제왕> 4회 SBS 밤 9시 50분
작가와 대본을 준비하고, 제작비를 확보하며, 주연 배우를 설득하는 과정은 나름대로 지난했지만 워밍업이었다. 4회로 접어든 <드라마의 제왕>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다 공격적으로 꺼내어놓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그려졌던 드라마 판은 한 꺼풀을 더 벗었고, 작품 한 편을 좌지우지하는 건 눈에 훤히 보이는 요소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SBC의 문상일 국장(윤주상)은 <경성의 아침> 11월 편성을 대가로 앤서니 김(김명민)으로부터 로비를 받았고, 제국프로덕션의 오진완 대표(정만식)는 앤서니를 추락시키기 위해 검찰에게 술 접대를 하며 문 국장의 구속을 청탁했다. <경성의 아침>을 오로지 재기의 무기로 삼고자 하는 앤서니를 비롯해 이들에게 드라마는 명예를 담보하는 수단일 뿐 순수한 목적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제왕>은 이고은 작가(정려원)를 이들의 반대편에 세워둠으로써 이야기의 추진력을 얻는다. 드라마 자체의 소중함을 알고, 드라마란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 굳게 믿는 고은의 가치관은 이상적이지만 기존 판에 조금씩 균열을 낼 만한 것이다. 건방진 배우 강현민(최시원)이 “앞으로는 당신을 위해서 작품을 쓸 거예요”란 고은의 말에 마음을 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더러운 세상에서 승리할 거”라던 앤서니 또한 “그렇게 살면 행복하니?”라는 고은의 질문을 오래도록 기억한 것처럼 말이다. 비록 “음지의 방식”으로 일하는 앤서니를 경멸했던 남운형(권해효)이 새로운 국장에 오른다는 설정은 다소 작위적이었지만, 초반부터 작품이 그어둔 밑줄만큼은 제법 선명한 것이었다. 지옥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마가 되어야만 하는가. 이고은과 함께 이 순진한 물음의 해답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