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국민참여는 그보다 더 못해 ··· 제3의 방식 찾기를
문재인ㆍ안철수 두 후보의 단일화 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여론조사'로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반대로 여론조사로만 단일화를 하는 것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듯이 대선에서 여론조사가 후보단일화 방법으로 처음 쓰인 것은 2002년 대선에서였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 양 측은 여론조사 문항 등을 둘러싸고 지루한 밀고, 당기기 협상과정을 거쳐 결국 후보등록 전날 단일화를 이뤄내기는 했다. 이 같은 단일화를 처음 접한 국민들은 큰 이의 없이 결과를 수용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여론조사로 대선후보를 정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은 만만치 않았다. 후보선출을 여론조사로 할 것이면 대통령도 여론조사로 뽑지 그러느냐는 비아냥거림이 터져 나왔다. 반대로 후보들 당사자 간의 정치적 선택이고 합의인 만큼 문제될 것은 없다는 반론도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문가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도 여론조사 단일화는 잘못된 측면이 많다. 굳이 안될 것도 없지만 근본적으로 여론조사의 오남용이라 할 수 있으며, 한국 정치의 고질적 철학의 빈곤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여론조사로 대선후보를 정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가 충분히 만들어졌느냐 하는 것이다. 공직후보는 단지 지지도가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누가 더 적합한지 또 그 사람이 왜 돼야 하는지 그 과정도 중요하다. 또 이러한 절차를 국민들이 충분히 공감했을 때 절차적 정당성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표본을 통해 전체 모집단의 의견을 추정하는 여론조사는 필연적으로 표집(sampling error), 비표집(non-sampling error) 오차 모두가 생기므로 1%라도 이기면 이긴 것이라는 식의 승자결정 방식은 여론조사에 대한 잘못된 접근방식이며 그릇된 시각을 만들게 된다. 즉, 표본오차 등을 무시하고 여론조사 수치만으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과학적 조사방법론에 코미디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복불복'적 요소를 결합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또 다른 문제는 최근에 더욱 심각해진 것인데 바로 전화로 하는 여론조사의 신뢰성 문제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인터넷 전화, 전화가 없는 가구를 포함해 전화번호부 비등재 가구의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된다고 추정된다. 이는 '대표성을 장점으로 하는 확률 표본조사는 반드시 모집단의 명부가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통계적 가정을 충족시키지 못함을 의미한다. 조사기관들은 전화번호를 임의로 조합, 생성하는 RDD(Randon Digit Dialing) 방식이나 휴대폰 조사 방식 등으로 이를 보완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미봉책에 가까우며 '정확하고 동등한((likely & equally)' 확률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지금 한국의 '전화' 여론조사 결과는 신뢰하기가 어려우며, 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고민마저 필요한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지적되는 상황에서 야권 대통령 후보를 여론조사로 선정하겠다는 발상은 여기저기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추가적 문제점을 짚자면 단일화 당사자들이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과정에서 조사기관의 정치적 성향을 판단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애초부터 정치적 편향성이 있어서는 안되는 조사기관들에 대한 정치권의 폭력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사실 그러한 경우 조사업계 스스로 성향을 기초로 한 조사기관 선택과 배제를 수용하면 안되며, 2002년 때처럼 주요 조사기관들이 조사의뢰를 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여론조사 단일화에 대한 비판이 민주당이 주장하는 모바일 국민참여 방식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으로 일반 국민이 경선에 참여하는 방식은 명분은 좋지만 이미 현실적으로 '조작경선'의 시비를 차단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실제 인위적 조작에 대한 취약성의 측면에서 보면 여론조사보다 못한 것이 모바일 방식이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이왕 시간이 지났으니 문제가 있어도 그냥 여론조사로 하자는 '배째라'식의 단일화 방식 결정은 잘못된 것이다. 단일화 방식은 대선과정에서 국민 모두가 지켜보는 중대한 절차이다. 따라서 '당사자끼리 합의하니 간섭 말라'는 태도도 올바른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결과 우선주의에 함몰돼 과정의 정당성은 도외시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게 된다. 야권으로서도 국민들로부터, 또 지지층으로부터 단일화 과정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 좋다. 그렇지 못한 경우, 박빙이 예상되는 본선에서 표이탈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야권은 어렵더라도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다. 머리를 맞대고 앉아 '제3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공론조사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여론조사 단일화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며, 구정치의 색채가 강하다. '새정치'를 내세운 야권이 선택할 단일화 방식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김헌태 정치평론가ㆍ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