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 축구기자의 울산 '구름 관중' 체험기

시계아이콘02분 16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한 축구기자의 울산 '구름 관중' 체험기
AD


[울산=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축구 보러 가십니꺼? 오늘 아시아 뭐 결승전이지예? 마 내도 가고 싶었는데 일한다꼬 이러고 있심더."

울산 현대와 알 아흘리(사우디)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10일. 오후 늦게 울산 공항에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결승전 시간을 알리는 깃발이 꽂힌 택시였다. 서울에서 취재차 왔다는 말에 택시 기사는 반가움부터 표시했다. 이어 1990년대 울산 축구의 향수와 이날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가 여기 45년 토박인데, 예전에 울산 사람들 현대 축구 보러 많이 갔지예. 경기장 가면 앉을 자리가 없었으예. 마 김현석이랑 유상철이, 꽁지 머리 김병지 금마는 부산 있는 알로이시오 나왔고. 지도 조기 축구에서 볼 차고 그런다 아입니꺼. 택시 뒤에 깃발 꼽은 거 보이소. 근데 오늘 하는 그 경기가 그리 큰 대횝니꺼?"

한참을 얘기하던 사이, 시계를 보니 어느덧 7시였다. 경기 시작 30분 전이었다. 김포에서 울산까지 비행기로 50분 남짓 걸렸지만, 공항에서 경기장까진 택시로 무려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특히 경기장 부근 교통은 그야말로 마비상태였다. 급한 마음에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켜보는 기자의 의심스런 눈초리. 택시 기사는 수차례 "평소 이렇게 막히는 길이 아인데"란 혼잣말로 결백을 주장했다.


경기장 근처에 가서야 모든 '오해'는 풀렸다. 경기장 2㎞ 앞 도로변부터 주차된 차들이 가득했다. 3600여 대가 수용 가능한 주차장은 무용지물이었다. 인도에는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날 경기 특석 예매분이 일찌감치 매진됐다던 얘기가 뒤늦게 떠올랐다. 역대 K리그 경기에서 문수경기장 최다 관중 기록은 2002년 7월 13일 울산-전북의 3만 9,242명. 월드컵 광풍의 효과였다. 이후 관중석은 조용했다. 올 시즌 울산의 평균 관중은 7천 여명에 불과했다. 이내 지난해 전북 현대-알 사드(카타르)의 '4만 대관중 기적'을 다시 한 번 재현되리란 기대감이 부풀었다.


경기 시작 20여 분을 앞둔 시간.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응원석과 일반석 1층은 가득 찼지만, 2층 일부와 원정석은 빈자리가 많았다. "역시 4만 관중은 꿈이었나"란 장탄식이 구단 관계자와 기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한 축구기자의 울산 '구름 관중' 체험기


기우였다. 킥오프 휘슬이 울린 뒤로도 관중은 꾸준히 들어찼다. 주말 근무 퇴근이 늦었던 시민들과 타 지역에서 온 K리그 팬들이 뒤늦게 경기장에 도착한 것. 경기장 주변 교통 체증 탓이었다. 전반전이 끝날 무렵, 홈팬들은 2층은 물론 알 아흘리 원정 서포터즈 주변까지 점령해버렸다.


경기 뒤 이근호는 "솔직히 처음 몸 풀 때 (관중석을 보고) 조금 실망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관중이 늘어나더니 후반이 시작할 쯤엔 가득 차더라"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한국에서 언제 또 이런 경기를 할 수 있을까 싶더라"라며 "평생 기억에 남을 경기"라고 즐거워했다.


후반 시작 뒤 전광판에 찍힌 이날 공식 관중 수는 무려 4만 2,153명. 수치가 허수가 아님을 증명하듯, 만원 관중이 아니고선 보기 힘든 파도 응원의 장관이 수차례 연출됐다.


홈팬들의 성원에 선수들은 빼어난 경기력으로 보답했다.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알 아흘리를 몰아붙이며 '철퇴 축구'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전반 12분 곽태휘가 선제골을 터뜨렸고, 후반에는 하피냐와 김승용이 추가골을 뽑아냈다. A매치를 넘어서는 열기가 경기장을 휘감았다.


하이라이트는 경기 종료 직전이었다. 울산 서포터즈 처용전사가 '잘 가세요'라는 곡을 선창했다. 울산이 대승을 거둘 때마다 종료 직전 부르는 특유 응원가였다. 평소엔 북쪽 응원석에서만 울려던 노래. 이날은 달랐다. 일반 관중까지 모두 따라 부르며 순식간에 '잘 가세요~ 잘 가세요~'가 그라운드 사방을 감쌌다. 기자석에 있던 취재진마저 서로를 쳐다보며 엄지를 세울 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였다.


경기 후 만난 선수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김영광은 "울산에 온 지 6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많은 관중은 처음이었다"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는 "꽉 찬 경기장을 보니 평소보다 전투력이 10배는 오르더라"라며 "선수들도 관중석을 보며 하나같이 '짱이다'라며 즐거워했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늘 이렇게만 찾아와주신다면 아마 한 경기도 안 질 것"이라며 지속적 응원을 당부했다.


김신욱 역시 "관중이 이렇게 많으니 우리도 더 힘이 났다"라며 "다음에 또 이렇게 또 와주시면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 축구기자의 울산 '구름 관중' 체험기


대다수 관중은 경기 종료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시상식을 지켜봤다. 마침내 우승 트로피가 주장 곽태휘에게 전달됐다.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 엄청난 양의 꽃가루가 흩날리며 11월의 '벚꽃 엔딩'을 만들어냈다. 울산 홈팬들도 열광적 환호를 보냈다. 지난해 알 사드 우승 당시의 썰렁했던 전주월드컵경기장과는 정반대였다. 문득 경기 전 만났던 택시 기사도 조만간 문수 경기장에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