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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축구기자의 울산 '구름 관중'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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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축구기자의 울산 '구름 관중'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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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축구 보러 가십니꺼? 오늘 아시아 뭐 결승전이지예? 마 내도 가고 싶었는데 일한다꼬 이러고 있심더."

울산 현대와 알 아흘리(사우디)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10일. 오후 늦게 울산 공항에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결승전 시간을 알리는 깃발이 꽂힌 택시였다. 서울에서 취재차 왔다는 말에 택시 기사는 반가움부터 표시했다. 이어 1990년대 울산 축구의 향수와 이날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가 여기 45년 토박인데, 예전에 울산 사람들 현대 축구 보러 많이 갔지예. 경기장 가면 앉을 자리가 없었으예. 마 김현석이랑 유상철이, 꽁지 머리 김병지 금마는 부산 있는 알로이시오 나왔고. 지도 조기 축구에서 볼 차고 그런다 아입니꺼. 택시 뒤에 깃발 꼽은 거 보이소. 근데 오늘 하는 그 경기가 그리 큰 대횝니꺼?"

한참을 얘기하던 사이, 시계를 보니 어느덧 7시였다. 경기 시작 30분 전이었다. 김포에서 울산까지 비행기로 50분 남짓 걸렸지만, 공항에서 경기장까진 택시로 무려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특히 경기장 부근 교통은 그야말로 마비상태였다. 급한 마음에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켜보는 기자의 의심스런 눈초리. 택시 기사는 수차례 "평소 이렇게 막히는 길이 아인데"란 혼잣말로 결백을 주장했다.


경기장 근처에 가서야 모든 '오해'는 풀렸다. 경기장 2㎞ 앞 도로변부터 주차된 차들이 가득했다. 3600여 대가 수용 가능한 주차장은 무용지물이었다. 인도에는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날 경기 특석 예매분이 일찌감치 매진됐다던 얘기가 뒤늦게 떠올랐다. 역대 K리그 경기에서 문수경기장 최다 관중 기록은 2002년 7월 13일 울산-전북의 3만 9,242명. 월드컵 광풍의 효과였다. 이후 관중석은 조용했다. 올 시즌 울산의 평균 관중은 7천 여명에 불과했다. 이내 지난해 전북 현대-알 사드(카타르)의 '4만 대관중 기적'을 다시 한 번 재현되리란 기대감이 부풀었다.


경기 시작 20여 분을 앞둔 시간.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응원석과 일반석 1층은 가득 찼지만, 2층 일부와 원정석은 빈자리가 많았다. "역시 4만 관중은 꿈이었나"란 장탄식이 구단 관계자와 기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한 축구기자의 울산 '구름 관중' 체험기


기우였다. 킥오프 휘슬이 울린 뒤로도 관중은 꾸준히 들어찼다. 주말 근무 퇴근이 늦었던 시민들과 타 지역에서 온 K리그 팬들이 뒤늦게 경기장에 도착한 것. 경기장 주변 교통 체증 탓이었다. 전반전이 끝날 무렵, 홈팬들은 2층은 물론 알 아흘리 원정 서포터즈 주변까지 점령해버렸다.


경기 뒤 이근호는 "솔직히 처음 몸 풀 때 (관중석을 보고) 조금 실망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관중이 늘어나더니 후반이 시작할 쯤엔 가득 차더라"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한국에서 언제 또 이런 경기를 할 수 있을까 싶더라"라며 "평생 기억에 남을 경기"라고 즐거워했다.


후반 시작 뒤 전광판에 찍힌 이날 공식 관중 수는 무려 4만 2,153명. 수치가 허수가 아님을 증명하듯, 만원 관중이 아니고선 보기 힘든 파도 응원의 장관이 수차례 연출됐다.


홈팬들의 성원에 선수들은 빼어난 경기력으로 보답했다.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알 아흘리를 몰아붙이며 '철퇴 축구'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전반 12분 곽태휘가 선제골을 터뜨렸고, 후반에는 하피냐와 김승용이 추가골을 뽑아냈다. A매치를 넘어서는 열기가 경기장을 휘감았다.


하이라이트는 경기 종료 직전이었다. 울산 서포터즈 처용전사가 '잘 가세요'라는 곡을 선창했다. 울산이 대승을 거둘 때마다 종료 직전 부르는 특유 응원가였다. 평소엔 북쪽 응원석에서만 울려던 노래. 이날은 달랐다. 일반 관중까지 모두 따라 부르며 순식간에 '잘 가세요~ 잘 가세요~'가 그라운드 사방을 감쌌다. 기자석에 있던 취재진마저 서로를 쳐다보며 엄지를 세울 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였다.


경기 후 만난 선수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김영광은 "울산에 온 지 6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많은 관중은 처음이었다"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는 "꽉 찬 경기장을 보니 평소보다 전투력이 10배는 오르더라"라며 "선수들도 관중석을 보며 하나같이 '짱이다'라며 즐거워했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늘 이렇게만 찾아와주신다면 아마 한 경기도 안 질 것"이라며 지속적 응원을 당부했다.


김신욱 역시 "관중이 이렇게 많으니 우리도 더 힘이 났다"라며 "다음에 또 이렇게 또 와주시면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 축구기자의 울산 '구름 관중' 체험기


대다수 관중은 경기 종료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시상식을 지켜봤다. 마침내 우승 트로피가 주장 곽태휘에게 전달됐다.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 엄청난 양의 꽃가루가 흩날리며 11월의 '벚꽃 엔딩'을 만들어냈다. 울산 홈팬들도 열광적 환호를 보냈다. 지난해 알 사드 우승 당시의 썰렁했던 전주월드컵경기장과는 정반대였다. 문득 경기 전 만났던 택시 기사도 조만간 문수 경기장에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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