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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없다, 가정과는 담 쌓았다, 주말은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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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대기업 임원으로 산다는 것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새벽 5시,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한바탕 출근 전쟁이 벌어진다. 대기업 임원들이 많이 살다 보니 새벽마다 출근을 위해 고급 승용차들이 주차장에 줄을 잇는 진풍경이 일상이다.


A씨 역시 자신의 차를 찾아 몸을 실었다. 벌써 출근 시간을 2시간 가까이 앞당긴지 석달이 지났다. 출근길에 여유는 없다. 비몽사몽간에 그날 회의 일정과 어젯밤에 새로 도착한 이메일들을 읽는다. 그렇다고 제때 퇴근하는 것도 아니다. 6시 퇴근은 엄두도 못 내고, 9, 10시까지 야근하기 일쑤다.

어느새 아이들은 아빠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됐고 이제는 주말까지 출근길에 나서며 가족들 얼굴보기도 더 힘들어졌다. 성공한 삶이라고 자부하지만 외롭다.
사무실로 들어서며 이미 출근해 있는 부시시한 표정의 직원들을 바라보며 A씨의 머릿속에는 영국 소설가 조셉 콘라드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우리가 사는 것도 꿈꿀 때나 마찬가지다. 혼자이기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국내 대기업들이 위기 대응을 위한 비상경영을 본격화하면서 임원들의 개인사생활이 없어지고 있다. 사생활뿐 아니라 금연, 절주 등의 내부 규정 때문에 어디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마뜩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이 결혼을 앞둔 모 대기업 임원은 요즘 부인의 성화에도 시달리고 있다. 회사측이 작은 결혼식을 치르키로 결정한 이후 일이다.


임원 B씨는 "회사측이 작은 결혼식을 치르도록 한 뒤 이를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는 방침때문에 아이 결혼을 조촐하게 치르기로 했다"며 "부인은 그동안 낸 돈이 얼마인데 우리는 못 받게 됐다"며 불평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새벽출근이 주요 경영진으로 확대되고 임원들 대다수도 새벽 출근길에 나서고 있다. 경영진 중 상당수는 주말도 반납하고 회사로 출근해 다음 주 업무를 위한 회의를 진행한다.


현대차그룹 역시 정몽구 회장의 새벽 출근에 맞춰 임원들 대다수가 6시를 전후해 출근을 마친다. 7시부터 회의가 시작된다. 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들도 주말에 돌아가면서 출근을 하고 있다. 포스코도 새벽출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달부터는 주요 부서별로 주말 근무에 들어갔다.


일부 그룹사를 제외하면 국내 대기업 임원의 대다수가 새벽출근, 주말출근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금연, 절주, 각종 경조사, 막중한 실적 부담까지 더하면 임원들에게 부과된 의무와 책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만큼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재계의 위기감은 절대적이다. 근무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실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임원들의 헌신은 사내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수억대에 달하는 보수와 스톡옵션,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임원은 대기업 직원이라면 누구나 목표로 하는 자리다. 과거 임원이라는 자리는 권력을 상징했다. 일은 부하직원이 하고 의사결정만 하면 되는 자리로 여겨졌다.


지금은 경영진의 뜻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자리가 됐다. 책임질 것은 많고 일은 힘든 것이 임원들의 실상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과거 대기업 임원들을 상징하던 단어가 '권력' 이었다면 이제는 '희생'으로 대변된다"면서 "직원들에 앞서 솔선수범해 새벽과 주말을 반납하고 즐기던 술과 담배도 먼저 끊어야 하는 모습이 오늘날 임원들의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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