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20여년간 불우 아동들을 도와온 구순의 할머니가 살아생전 자신이 가진 것을 기부하고 싶다며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내놓았다.
9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따르면 지난달 정인숙(54·여) 씨는 어린이재단에 전화를 걸어 "거동이 불편한 노모의 뜻에 따라 어머니가 사놓은 아파트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정씨에 어머니인 양애자(89·사진) 할머니는 지난 2000년 기부를 염두해 두고 강남구 서초동에 있는 이 아파트를 구입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지만 함께 사는 막내딸 정씨 외에 자녀들에게는 아파트 구입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
약 115㎡(35평)인 이 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7억∼8억원으로, 전세보증금 3억을 제외하면 4억~5억원을 기부하는 셈이 된다.
양 할머니는 1993년부터 어린이재단의 정기후원자로 매달 20만∼30만원을 기부해 왔다. 몸이 아프기 전만해도 방송을 통해 소개되는 어려운 아동들을 보면 하루에 몇 번이고 기부전화를 걸어 나눔을 실천하곤 했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양 할머니가 지난 2010년 3월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 병상에서 생활하면서 치매 증상까지 나타나자 얼마 전부터는 정씨가 후원금을 대신 전달하고 있다.
정씨는 어머니를 대신해 "아이들이 가정 환경을 스스로 선택한 건 아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 상처는 정말 크다"며 "어머니의 기부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자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는 몇 해 전 대전 소재 신학대학교에도 건물을 기부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아버지가 계실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족은 풍족하게 살고 있다"며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내가 물려받은 재산도 추후에는 좋은 일에 쓰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이재단은 양 할머니의 뜻에 따라 기부받은 아파트를 국내외 아동의 배움을 지원하는데 사용할 예정이다.
조인경 기자 ik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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