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초대석 l 고독의 위로 향기로운 점묘화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성악가는 관객을 응시한다. 오케스트라와 관객을 하나로 잇는 가교(架橋)역할은 둘의 미덕이다. 소프라노 이원신은 “말을 안 해도 물 흐르듯 소통의 밸런스가 잘 조화되면 관객호흡도 뜨거워진다. 지휘자의 생각을 많이 묻고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 독창적 무대 힘은 열린 마음의 교감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아름의 꽃다발, 첫 느낌 같은 감색 단풍잎이 하나 둘 지는 수목(樹木) 길이었다. 물방울처럼 쏟아지는 투명한 햇살이 흰색을 동경한 핑크빛 스카프에 배어들어 영상(映像)이 깊어만 갔다. 완성과 미완사이 그녀의 서정적이며 윤기 넘치는 목소리가 가을 하늘에 증폭됐다.
소프라노 이원신(42). “요즈음 노래를 하면서 발전적으로 더해진다는 느낌이다. 보다 부드럽고 풍부해지고 따뜻해지고 있다는 감흥이 있다”고 음악적 감수성을 전했다. 그녀는 드보르작(Antonin Dvorak) ‘집시의 노래(CiganskeMelodie op.55)’ 일곱 전곡을 체코어로 소화하는 소수 국내 성악가 중 한사람이다. 체코 음악과 인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깃털처럼 가벼이 허공을 가르며 펼쳐지는 긴 장삼자락 승무(僧舞)와 고택(古宅) 기왓장의 유연한 선(線) 운율이 잘 어울린 듯 묘한 동질성이 강하게 밀려왔다. 필연 같은 힘에 끌려 빠져들었다”고 했다. 많은 오페라 무대에 섰는데 음악적인 면을 떠나 여인으로서 가장 많이 닮은 스타일은 어떤 역할일까.
“2년 전 체코 프라하에서 베르디(Giuseppe Verdi) 오페라 ‘춘희(La Traviata)’의 주인공 비올레타 역을 했다. 드라마틱한 비극적 사랑의 내용으로 막(幕)마다 성격이 바뀐다. 쾌활하고 정열적으로 즐기는 1막에서부터 2막의 지고지순한 여성상 그리고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지며 스러져가는 무희이다. 때문에 목소리도 감정도 그때그때 표현해야 하는데 끝나고 나면 대부분 성악가들은 탈진상태가 된다. 나는 2막 스타일”이라고 귀띔 했다(웃음).
이원신은 기억에 남는 무대로 2011년 새해 체코 드보르작 홀 신년공연을 꼽았다.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는데 객석에서 ‘원더풀’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한국인으로 유럽의 비중 있는 극장서 새해 첫 공연을 한다는 것도 영광이었지만 ‘한국의 소프라노’라는 자긍심이 컸던 무대였다’고 역설했다.
전달하는 음악이 청중과 동감을 유지하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음악을 표현 할 때 그림에 비유하는 습관이 있다. 목소리가 색채처럼 화려하게 펼쳐질 때가 있고 붓놀림이 약할 때도 있다. 이러한 색채의 조율은 관객과 소통을 명확하게 보이게 한다. 그 긴밀한 교감을 즐긴다.”
이 가을에 들을 추천곡을 부탁했다. 우리가곡 ‘임이 오시는지’, 드보르작 ‘달에게 바치는 노래’와 인생에 대해 한번쯤 음미해볼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가곡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꼽았다. 한편 그녀는 오는 17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재)우당장학회의 독립군 후손을 위한 장학금 전달식에 성악 재능기부 공연을 갖는다.
이코노믹 리뷰 권동철 기자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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