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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철수야, 요즘 반에서 몇등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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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철수야, 요즘 반에서 몇등 하니?" 이의철 부국장 겸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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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금 전 웅진그룹 회장은 이달 초 기자회견을 자청해 본인과 그룹을 둘러싼 몇몇 이슈들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기자회견 도중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주요한 이해관계자인 채권단은 "변명에 불과하다"며 윤 전 회장의 기자회견 자체를 평가절하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윤 전 회장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소통에는 '진정성'만큼이나 '타이밍'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통이 시대의 화두다. 누구나 소통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소통이 다 소통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지금 대선 후보가 된 안철수는 일전의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 사람이 가진 역량의 크기는 전문지식 곱하기 소통능력입니다. 아무리 전문지식이 많더라도 소통능력이 제로라면 역량이 제로인거죠." 이 말의 포인트는 '곱하기'라는 데 있다.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어떨까. 대선의 시대정신이 '직전 5년간 집권했던 정치세력에게 가장 결핍돼 있는 점의 극복'이라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소통'이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부족했던 게 '소통'이었다는 점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도 기본적으로 고객과의 '소통'에 달려있다. 외부고객은 물론 내부고객과 소통이 되느냐가 그 기업의 시장에서의 성공 나아가 지속 가능성마저 결정한다. 커뮤니케이션 부서나 대외 창구 역할을 하는 홍보실의 위상이 나날이 커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의 소통을 둘러싼 우스갯소리 하나. 상사에 시달리고 실적에 치여, 매번 파김치가 돼 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 A씨. 자정이 다 돼 집에 들어오는 게 일상이지만, 오늘만큼은 큰 맘먹고 중학교 2학년 큰아들과 저녁을 같이하기로 했다. "요즘 애가 사춘기 같아, 엄마 말도 잘 안 듣고 눈빛이 달라졌어"라는 아내의 귀띔. 하지만 막상 아들과 같이 밥상머리에 앉으니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 지 모르겠다. 친한 친구가 있는지, 좋아하는 과목이 뭔지, 학교에서 폭력이나 왕따는 없는지 궁금한 건 많다. 고민하던 A씨가 결국 꺼낸 첫마디. "아들아, 너 요즘 반에서 몇 등하니?" '소통'의 기술에 무지할 경우 부모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헛발질을 하게 된다.


학생들이 교장선생님 훈시를 싫어하는 이유와 직장인들이 사장님 말씀을 지루해하는 이유가 똑같다고 한다. 부모나 사장이나 '옳은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일 열심히 해라, 주인의식을 가져라 등등. 그런데 이 '맞는 얘기'를 또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은 부모의 말을 싫어하고, 직장인은 사장의 말을 달갑게 듣지 않는다. 울림이 없는 '옳은 얘기'가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페이스북에 이처럼 '좋은 말씀' '옳은 말씀'을 올려 불특정 다수를 가르치려 한다.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페이스북이 오히려 소외의 도구로 쓰이는 재미있는 현실이다.


"자, 위기의식을 갖고 일 합시다. 지금 회사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부장님, 일 하느라 너무 힘듭니다."


"뭐? 부장인 나는 더 힘들어, 이 사람들아. 지금 글로벌 위기야. 다 힘들단 말야."


"여보, 요새 나 힘들어."


"뭐? 나는 당신 만나서 더 힘들어. 그때 결혼을 잘못해서 20년째 이 고생이야."


소통되지 않는 대화는 겉돌게 마련이다. 서로의 눈을 보고 얘기한다고 해도 즐겁지 않다. 대선 후보들의 국민에 대한 정견 발표나 기업의 고객에 대한 소통이 혹시 이런 식이 아닌지. 부부간의 대화나 자녀와의 식사 자리가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는지. 나부터 소통 방식을 되돌아볼 일이다.






이의철 부국장 겸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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