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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뒷전, 기업인 트집잡기 국감

시계아이콘01분 38초 소요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해마다 재계 총수들이 출장을 고심하는 시기가 있다. 바로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10월이다. 공개적으로 기업 총수들을 몰아세워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는 국회의원과 이를 피하려 해외로 떠나는 총수들의 눈치보기가 시작됐다.


올해 역시 삼성, SK, KCC, 롯데, 현대백화점, 신세계 등의 총수들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일부 인사들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출국길에 나섰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내수 불황으로 내년도 사업 전략 수립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시기에 국감이 총수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 글로벌 기업은 국감 증인으로 본사 A 사장을 출석시켰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증인으로 채택하자 본사 사장이 직접 국감장을 찾은 것이다. A 사장은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국회의원들의 질문과 호통소리에 답변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의원의 질문이 지난 뒤 A 사장이 "그건 제가 담당하는 분야가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당황한 국회의원은 "그럼 여기 왜 증인으로 나온겁니까?"라고 질문했다. 다시 A 사장의 답변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증인출석 요구를 해서 나왔습니다."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증인을 불러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는 모습만 연출하고 그 기업의 책임 있는 답변은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증인이 국감장을 빠져 나간 뒤 한 국회의원이 옆 국회의원에게 한마디 한다.


"이래서 본사 최고경영자(CEO)를 불러야 된다니깐. 모른다잖아."


국정감사는 한해 국정에 대한 감사를 벌이며 잘못한 일들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국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하지만 기업들의 눈에는 한낱 '정치쇼'로 비춰질 뿐이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하나 교환할 때도 사장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며 떼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서 "국감에 재계 총수들을 불러내는 구태의연한 행태는 그 일을 담당하는 실무자가 있는데도 당신이 책임질 수 있냐며 사장 나오라는 블랙 컨슈머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국정감사시 증인으로 꼭 필요한 기업들도 있다. 정부 정책과 어긋나 그 행태를 지적하고 신랄하게 비판해야 할 경우다. 하지만 국감장에선 모든 의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한다. 질의시간이 한정돼 있다 보니 속사포처럼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하고 "네, 아니오"로 대답해 달라는 얘기만 되풀이 한다.


언성은 점차 높아지고 기업인들은 모욕감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국감 기간 내내 이런 불편한 상황은 이어진다. 결국 재계 총수들은 국감에 참석하기 보다는 해외 출장길에 나선다. 굳이 국감장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창피를 당할 필요 없이 이유 아닌 이유를 만들어 해외로 나서는 것이다.


재계는 내년 우리나라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기 침체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향후 수년간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락해 1%까지 주저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는 이같은 움직임을 먼저 감지하고 올해 초부터 연일 비상 경영에 나서고 있다.


연일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삼성그룹은 위기감이 대단하다. 잘 나가는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어려워지는 내년이 문제라고 강조한다. 경영진들은 출근 시간을 새벽으로 앞당기고 임직원들은 절주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비단 삼성그룹 뿐만 아니라 재계 전체가 위기,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국회는 재계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총수들을 불러내 호통칠 생각만 하고 있다. 국감장에서 국정감사가 아닌 재계 총수들의 혼나는 장면이 통쾌하지 않고 불쾌한 이유다.




명진규 기자 ae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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