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지송 사장
“LH 경영정상화는 내게 주어진 마지막 숙명(召命)이 아닌가 생각한다. 50년 가깝게 봉급쟁이 생활을 해오며 국가로부터 큰 혜택을 받았다. 이제는 갚아야 한다. 그곳이 바로 LH다.”
“국가와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 모든 역량과 정성을 다해 공사의 경영을 정상화시키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공기업 선진화의 성공사례로 만들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각오만 있을 뿐입니다.” 이지송 사장의 일성이다.
LH의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는 이지송사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통합하기 이전에는 정부 정책사업 위주로 수행을 하다보니 사업경영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지송 사장은 달랐다. 통합 공사는 부족하고 바꿔야 할 것들이 많았다. 바꾸고 갈아야 했다. 개혁이 필요했다. 이 사장은 취임 후 ‘이지송식 개혁’을 시작했다. 그는 통합 공사의 사명인 LH라는 이름만 빼고 다 바꿨다. 이 사장은 재무, 사업, 인사, 조직, 기업문화, 청렴 등 기업경영의 모든 요소를 변화시키고 개혁했다.
그는 자신부터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자신을 따르는 임직원의 변화는 없다고 되뇌이며 주말에도 쉼없이 출근했다. 이 사장은 지난 2년간 1, 2급 직원 75%를 물갈이 하고 인력 786명 감축했다.전직원이 임금 10%를 반납하고 인천논현 집단에너지 사업 등 고유목적 외 사업은 정리했다.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국민의 기업인 LH를 살릴 수 있다면 선택이 없었다. 또 10만원이상 금품수수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외부감찰단 설치, 클린 입찰시스템 등을 도입해 청렴 LH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겼다.
이 사장은 “지금으로는 우리가 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이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고 말했다. 이지송 사장은 “지난해 유동성 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채비율 증가세가 둔화하고 판매가 신장되고 있는 등 정상화의 틀을 잡아가고 있는 만큼 이를 토대로 향후에는 LH의 공적 역할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장이 강조하는 LH의 공적 역할은 서민주거복지와 일자리 창출 역할 강화다. 그가 “최근의 전세난 완화를 위해 지난해보다 착공물량을 8천호 증가해 7만1000호로 확대하는 등 무주택 서민의 주거복지를 위해 LH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한 것은 이를 방증한다.
LH 출범과 동시에 시작된 사업조정
이지송 사장은 취임 당시 “선 재무, 후 사업”이란 기치를 내걸었다.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LH 재무 부실의 원인과 대책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 사장은 즉시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재무개선특별위원회를 조직,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LH의 총부채는 2010년 6월말 기준 117조원에 육박했다. 이중 이자를 부담하는 금융부채는 84조원으로 하루 이자만 99억원에 달했다. 민간기업 이었다면 부도가 났을 법한 규모다. 사업조정 없이 모든 사업을 추진할 경우 2018년이면 부채가 325조원까지 급상승해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할 것으로 판단 한 이 사장은 시나리오별 상황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밀어붙였다.
그러나 사업조정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자체의 반발과 압력이 만만치 않았다. 2010년 7월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 언론의 LH 재무상황 악화 등이 집중 보도되면서 자금조달용 채권의 발행이 사실상 중단되는 등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 없이 무분별하게 벌여놓은 사업을 정리해야만 했다.
LH가 살고 국민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사업조정은 필수였다. 민원과 각종 비난에도 이 사장은 사업조정을 실시했다.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 사업을 그대로 진행하는 것은 국가 경제나 후손에 큰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업조정 당시 이 사장은 지역주민은 물론이고 지자체 장, 정부, 국회의원 등 이해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업조정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를 구했다.
지난 2010년 9월에는 한 달 넘게 매일 국회로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여·야 지역구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지역구의 이해를 넘어 더 크게 생각해 달라며 협조를 구했다. 심지어 아들 또래 되는 의원들에게도 이재오 장관식 폴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역구 의원들이 자기네 지역은 LH의 사업조정 내역에서 빼달라며 사정할 때에도 흔들지 않았다. 그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의원님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며 사업조정에 힘을 보태줄 것을 읍소했다.
이지송 사장은 사업조정이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공익사업이지만 경제성에 입각해 사업을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과 새로운 사업방식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개발사업 패러다임이다. CEO가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LH를 의미한다.
현장, 일, 고객 중심…소탈 소통 경영도 눈길
이지송 사장의 경영철학은 첫째도 현장, 둘째도 현장, 셋째도 현장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이 그의 경영방식이다. 그는 사업 현장에는 언제 어디서나 불쑥 불쑥 나타나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실제 이 사장은 취임 이후 추석 연휴때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인 강남서초, 강남세곡, 고양원흥, 하남미사 등 4개 시범지구 현장을 찾았다. 그는 최근까지도 주말을 이용해 지역 현장을 순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현장을 중시한다.
그는 현장 ‘개발사업단’을 대폭 확대 강화하고 본사와 지역본부의 지원인력을 줄여 LH 전체인력의 57%인 3750명을 현장으로 전진 배치하기도 했다. 토지보상에서부터 토지개발, 주택건설, 토지·주택 판매 등 사업의 전 과정을 고객이 있는 일선 현장 사업단으로 옮겨 일괄수행 할 수 있게 하는 자기완결형 조직구조 개편도 현장 중심 경영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도면밀하면서도 강력한 추진력으로 인해 주변에서는 이 사장을 ‘불도저’, ‘돌쇠’, ‘카리스마 Lee’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사장은 잔정이 많고 섬세해 감성적 경영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 최근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여직원의 얼굴에 뾰루지가 많이 돋아있는 것을 안타까워 한 그가 “일에 매진하다 생긴 피부 트러블인데 당연히 사장인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며 자신의 개인카드로 현금을 인출해 여직원에게 전달했다는 일화는 직원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당시 겉봉투에는 이름조차 없이 단지 ‘피부관리’란 네 글자만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 사장은 소탈 소통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요즘 CEO가 직원들과 소통하지 않고 먹통이 되면 꼴통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거든요”라고 말한다. 이 사장에게 직원들과의 소통에 신경을 쓰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변이었다. 그는 소탈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직원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통합 준비단 시절부터 점심을 직원들과 함께 햄버거나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사장 취임이후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해온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직원들과 간단하게 캔 음료수를 마시면서 직원들과 대화를 누누는 캔미팅 역시 그가 소탈한 소통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지송 사장은 누구?
공기업 선진화 일궈낸 파워 CEO
이지송 사장은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1965년 건설부 한강유역 합동조사단(현 국토해양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군 제대 후 한강유역조사단에 복직한 그는 조사단이 수자원공사로 흡수된 이후 10년간 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이후 공직 생활을 접고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30여 년 동안 건설 현장 생활을 했다. 안동댐, 대청댐, 단양댐, 진주 남강댕, 소양강댐, 말레이시아 트랭가누댐등 모두 9개의 댐 공사에 참여하며 업계에서 ‘댐쟁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중동특수 시절에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중동지역에서만 무려 11년간 근무했다.
이지송 사장이 현대건설을 재건한 일화는 현대건설에서는 전설로 남아있다. 현대건설 사장으로 취임했던 때는 외환위기 이후 유동성 위기로 인해 회사가 파산 직전까지 이른 때였다. 이 사장은 현대건설 사장 취임식에서 세 가지를 약속했다. ‘구조조정 미명 아래 사람을 자르지 않겠다’ 15년째 받지 못한 이라크 공사 미수금을 받아내겠다, 창업자가 조성한 서산 땅을 되찾아 개발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현대건설 직원들은 “말로 그칠 것이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장이 2006년 퇴임할 무렵 세 가지 약속을 모두 지켰다. 이라크 미수금 회수를 위해 미국 워싱턴을 직접 날아가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을 만나 호소한 끝에 이라크 정부로부터 6억8000만달러 미수금을 돌려받았다. 20년간 방치됐던 충남 서산 간척지도 기업도시로 탈바꿈시켰다. 2006년 3월. 이지송 사장이 퇴임하던 해 현대건설은 사상 최대인 3976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취임 시 920원하던 주가는 5만7000원으로 62배가 올랐고 779.8%의 부채비율은 213.2%로 줄었다. 경복대 총장으로 후학을 위해 3년간 대학 강당에 섰던 이 사장은 2009년 8월말이 되자 MB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의 상징이 된 LH의 초대 사장 내정자로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사장은 “모래바람 날리는 사막의 현장에서 밥 먹으면 입안에서 모래가 자근자근 씹히죠. 그래도 그 땐 그 일 아니면 먹고 살지 못하는 줄 알고 정말 열심히 일 했죠.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이코노믹 리뷰 홍성일 기자 h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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