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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 김시진, 두 가지 당근에 발목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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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 김시진, 두 가지 당근에 발목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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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내게 위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둔 김시진 감독은 초연했다. “더 이상의 부진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평소 내색을 하진 않았다. 입에 가져가는 담배 개비만 늘리며 쓸쓸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중반까지 상위권을 유지하던 선수단이 후반기 연패 늪에 빠지자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짙어졌다. 취재진과의 대화 90%를 건강 이야기로 메울 때가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중반 요통에 만성두통을 앓았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담당의사는 “승리를 많이 거두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오진은 아니었다. 넥센이 전반기를 3위로 마칠 때만 해도 김 감독의 얼굴은 비교적 밝았다. 취재진을 보자마자 농담을 건넬 만큼 유연성도 발휘했다. 갑작스레 닥친 후반기 부진에도 그랬다. 뚜렷한 변화는 발견되지 않았다. 포커페이스였다.


한 관계자는 “김 감독이 팀 성적이 주춤했던 7월 초부터 보이지 않게 압박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도 “팀 성적이 내리막을 걷자 구단 고위층으로부터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하겠느냐’와 같은 질문을 적잖게 받은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선수단 지휘를 둘러싼 팬들의 질책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질' 김시진, 두 가지 당근에 발목 잡혔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넥센은 올 시즌 가을야구에 사활을 걸었다. 전신인 현대는 한국시리즈 우승만 네 차례 거둔 전설적인 강팀. 간판이 바뀐 뒤 위상은 크게 추락했다. 지난 4년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은 2009년 이룬 6위였다. 지난 시즌은 전신인 현대 시절 포함 한 차례도 찍지 않았던 꼴찌였다.


잇단 추락에도 구단은 채찍 대신 당근을 건넸다. 김 감독은 계약 만료 전인 지난해 3월 29일 넥센 구단과 조기에 재계약을 체결, 2014년까지 감독직을 보장받았다. 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 등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 구단 고위 관계자는 “그래도 김 감독만큼 우리 팀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며 “선수단과 지도력의 동반 성장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이 재계약을 맺었을 당시 넥센은 재정적 불안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직원들의 연봉을 인상시켰고 선수단과의 연봉 협상에서도 선수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 전력 보강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장석 대표는 김 감독의 요구를 수렴, 트레이드에 직접 소매를 걷어붙였다. 한 해설위원은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영입 작전이었다”며 “주축 선수들을 팔아넘긴 과거를 지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듯 보인다”라고 평했다.


실제로 김병현, 이택근 등의 영입을 통해 ‘팔아치우기’로 굳어졌던 구단의 이미지는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이 대표는 이를 퍼즐에 비유했다. 웬만해선 언론과의 인터뷰를 기피하는 그의 속내는 김병현 영입 기자회견에서 드러났다.


“김병현 영입은 몇 가지 퍼즐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퍼즐이다. 이제 몇 개의 퍼즐만 더 맞추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다.”


'경질' 김시진, 두 가지 당근에 발목 잡혔다


정상 등극이 가능하다고 내다본 시점은 내년. 올 시즌이 초점은 포스트시즌에 맞춰져 있었다. 김 감독과 선수단은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초반 강팀들을 연달아 격파하며 다크호스로 부상했고, 지난 5월 23일 잠실 LG전을 10-7 승리로 매듭지으며 팀 최다인 8연승을 달렸다. 그 사이 리그 순위는 2009년 4월 16일 이후 3년 1개월 6일 만에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구단 전체가 들뜬 건 당연지사. 강정호는 “우리 팀이 정말 강해진 것 같다”라고 기뻐했다. 김 감독도 “코칭스태프, 선수단, 프런트 모두와 이 기분을 즐기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역효과가 숨겨져 있었다. 높아진 기대와 명분이다. 넥센이 상위권을 유지하던 시즌 중반 이 대표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퍼즐이 거의 맞춰진 것 같다. 한 두 개만 더 맞춘다면 우승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어 “예상 밖의 활약을 선보이는 서건창 등의 등장으로 퍼즐 게임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기대치를 넘어선 선수는 서건창에 머물지 않았다. 넥센은 올해 8개 구단 가운데 외국인 영입에 가장 적은 돈을 쓰고도 최대 효과를 누렸다. 브랜든 나이트와 벤 헤켄은 모두 리그 정상급 투수로 우뚝 섰다. 20홈런-20도루 클럽 가입을 바라보는 타자도 강정호와 박병호, 두 명이나 보유한다.


하지만 팀 성적은 후반기 이후 계속 내리막을 걸었다. ‘부상 폭풍’을 이겨내지 못했고, 그 속에서 선수단 분위기는 크게 가라앉았다. 결국 김 감독은 두 가지 부담에 짓눌려야 했다. 구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과 사라져버린 명분이다. 성적 부진에 따른 중도 계약 해지를 충분히 예상했던 그였기에 어깨는 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시즌 전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2012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질' 김시진, 두 가지 당근에 발목 잡혔다


“팬들은 충분히 많은 시간을 기다려줬다. 이제는 모두 좋은 성적을 바랄 것이다. 내게 내년이 위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트레이드로 인한 전력 누수는 더 이상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내게는 내년부터가 전쟁이다. 최소 상위권 경쟁을 하는 팀으로 올라서야 2013년 우승을 꿈꿀 수 있다. 더구나 최근 1년 동안 한대화 한화 감독과 나를 제외한 모든 감독들이 교체됐다. 총성이 이미 오래 전에 울린 셈이다. 더 이상 하위권에 머무를 수는 없다. 2012시즌을 내 감독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여기겠다. 비장하게 싸우겠다.”


김 감독의 각오만큼이나 올 시즌을 임하는 넥센의 자세는 남달랐다. 코칭스태프는 지난 마무리훈련부터 훈련량을 대폭 늘렸다. 선수들에 대한 간섭의 폭도 넓혔다. 이전까지 넥센은 훈련을 선수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대표적인 구단으로 통했다. 현대 때부터 내려온 팀 스타일을 바꾸면서까지 반등을 노렸던 셈이다.


경질 이후 김 감독은 넥센 구단에 대한 서운함이나 아쉬움을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다. 김 감독의 최측근은 “그것이 진심이다. 오히려 구단에 미안해하고 있다. 내년에도 성적이 나지 않았다면 아마 스스로 옷을 벗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 감독은 몇몇 매체의 보도와 달리 여전히 넥센 구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언제 다시 인연이 닿을지 모르는 일”이라며 “정황상 휴식기가 길진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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