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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5.0]'책벌레 외교관' 30년, 책장수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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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使에서 출판사 대표로 새 삶 이동진


24세에 외무고시 합격
월급의 2/3 책값으로 써

40년 동안 꾸준한 글쓰기
시·소설·번역 가리지 않아


출판사 경영 어렵지만
내가 선택한 길 후회없어

[은퇴5.0]'책벌레 외교관' 30년, 책장수는 내 운명 이동진 대표는 일본, 벨기에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한 뒤 해누리 출판사를 차렸다. 이 대표가 자신의 시집 '내 영혼의 노래'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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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책을 좋아하다보면 글 쓰고 싶고, 그러다 보면 나처럼 돼."


그가 외교관 생활을 접고 출판사를 차린 지도 12년이 넘었다. 몇몇 거대 출판사를 제외하고는 사양화 되고 있는 출판사업에 무모하게 뛰어든 그의 의중이 궁금했다. 고심 끝에 질문한 기자에게 이런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동진(68) 해누리출판 대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 했다. 대학시절에는 시 쓰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신문기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1969년 법대 재학 중 덜컥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대학1년까지만 해도 성직자를 꿈꿨던 그였기에 3년 뒤 외무고시 합격은 인생 경로의 대전환이었다.


"같이 술 마시던 친구들이 사법고시 공부 차 절간으로 들어가면서 별 뜻없이 외무고시를 한 번 쳐봤는데 그게 됐죠." 현재의 청년실업률을 생각하면 기막힌 발언이지만 그때는 1969년, 무려 40년 전 얘기다. 그렇게 그는 24세, 젊은 나이에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은퇴 후 뭐할까 고민? 나한텐 그런거 없었어요"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책과 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외교관 월급의 3분의 2는 책값으로 나갔다고 했다. 해외에 나갈 때면 고서(古書) 하나씩은 꼭 사서 돌아왔다.그 중엔 1867년에 인쇄된 유럽의 헌 책방에서 어렵사리 구한 책도 있다. 그는 "그때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한 페이지를 뚝 떼서 액자에 걸어 팔아도 꽤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그는 시, 소설, 희곡, 번역서 가리지 않고 글을 쓰는 '다방면 글쟁이'이기도 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월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했으며 1970년 여름에는 20대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자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월간지를 출간하기도 했다. 캐치프레이즈는 '20대의 손으로 만든 20대의 잡지'. 각 대학 정문 앞에서 노상을 차리고 팔았는데 2시간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1년 뒤엔 상설무대라는 극단을 차렸다. 그가 직접 희곡을 집필했다. 1992년엔 세계 시인대회에서 한국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런 왕성한 창작열로 세상에 빛을 본 시집이 22권, 소설이 6권, 희곡집이 5권, 번역서가 80권이다. 이 중 소설집 '우리가 사랑하는 죄인'은 1990년 8월 KBS 미니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는 "원작료로 받은 500만원으로 딸 아이 대학 등록금 냈었다"고 당시의 감회에 젖기도 했다.


40년 평생 동안 쓴 시들 중에서 애착이 가는 것을 묶은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총 1120페이지. 한 손에 쥐기에는 버거운 책 한권이 나왔다.


이 같은 이유로 그는 2000년 55세의 나이로 은퇴한 후에도 '이 다음엔 뭘 해야 할지' 망설이는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가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던 셈이다. 그는 "돈을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택했다"며 "이때야말로 자기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출판업ㆍㆍㆍ힘들지만 내가 선택했으니까


2000년 처음 해누리 출판사를 열었을 때만 해도 공동창업이었다. 경영난으로 한 둘씩 떠나더니 이제는 혼자 남았다. 직원은 5명 남짓. "외교관하면서 받은 월급 깎아먹기 바쁘죠"라며 출판업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양질의 서적을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읽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판업를 시작했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요즘 출판시장을 두고 그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독자들이 정말 좋은 책을 구분할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베스트셀러는 워스트셀러"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학부모들을 상대로 강연도 자주 나간다. 2003년엔 책 출간으로 좋은 일에 보탬이 되고자 평소 친분이 있는 문인, 예술가들의 무료 기고를 모아 '착한이웃'이라는 잡지를 발행해 수익 전액을 요셉의원에 기부하기도 했다. 현재는 신규 독자 확보에 실패해 2008년 이후 부터 무기한 휴간상태다. 그는 언젠가 목돈이 생기면 복간하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몰두하는 작업은 셰익스피어 전집을 번역하는 것이다. 번역가로 유명한 김재남 교수가 살아생전에 번역했던 내용을 요즘 문체에 맞게 다시 손질 하는 것이 그의 주요 작업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총 3권을 번역해 발간했다.


◆은퇴가 아니라 '전직', "죽어야 진짜 은퇴"


그는 오랜 기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은퇴라고 규정짓지 말라고 했다. 즉, 은퇴라는 말로 그간 살아온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지 말라는 것. '은퇴'보다는 '전직'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죽는 것이 진정한 (인생)은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이런 마음가짐이면 은퇴를 했다 하더라도 할 일이 태산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2의 삶을 위한 일도 동시에 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적어도 50세 이후에 하는 일들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지 않겠나"라고 조언했다.


은퇴 이후 무엇을 하는지 못지 않게 걱정되는 것이 자산과 소득이다. 자산이 많으면 걱정이 없겠지만, 대다수는 일거리와 함께 벌이를 고민한다. 그러나 그는 "출판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고 들려줬다. "팔리든 안 팔리든 좋은 책, 즉 고전을 내자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어요." 그는 고전을 '정신적 보약'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도 궁금해하는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참 듣던 그는 "내가 얘기 하나 해줄게요"라며 말했다.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이 그의 부자친구와 나눈 대화라고 했다. 끊임없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한 부자친구에게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봐 너와 나의 차이는 (강조하며)'비교적' 돈이 많다는 것뿐이야. 그리고 너보다 '비교적' 돈이 많은 사람도 수천 명이 넘어. 대신 나는 너한테 없는 걸 갖고 있어. 넌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국 만족하고 있지 못하잖아" 아차 싶었다.


"좀 심플하게 살면 안되나. 가난하게 살면 억울한가. 어차피 공수래 공수거인데…." 돈보다 더 큰 가치를 앞세우고자 하는 그의 인생철학이 읽히는 대목이었다.




김혜민 기자 hmeen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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