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美 기업의 특허, 새로운 통상 공격 무기 가동될 가능성 높아"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전문가들은 미국서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소송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자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기승을 부렸던 '수퍼 301조'를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을 내 놓고 있다.
26일 재계 한 관계자는 "비전문가 집단인 배심원단이 평결을 내렸다는 점도 있지만 이번 애플과 삼성전자간의 특허 소송 결과는 마치 '수퍼 301조'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다시 기성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퍼 301조는 지난 1998년 제정됐다. 미국 통상법 301~309조는 '일반 301조'로 불린다. 미국은 1998년 종합무역법을 제정하며 보복조항을 한층 강화한 310조를 내 놓았다. 이를 두고 '수퍼 301조'로 불렀던 것이다.
수퍼 301조는 교역대상국이 불공정행위를 했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이 보복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보복을 할 수 있는 조항이다.
당시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3월말 해당국가의 무역장벽보고서(NTE)를 의회에 제출한 뒤 30일 안에 우선협상 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이후 1년~1년 반 안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보복판정을 하고 30일 안에 보복에 들어갔다.
조사대상과 관계없이 어떤 상품이나 분야에 대해서도 보복조치가 가능했다. 무역협정 폐지를 비롯해 관세 및 비관세장벽 부과, 양자간협정 체결 등의 조치가 가능하며 고율의 보복관세를 물려온 것이 특징이다.
수퍼 301조 제정 이후 미국은 국제 사회에서 끊임없이 비난을 받아왔다. 국제 분쟁해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보복조치이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었다.
수퍼 301조는 이후 1990년 이후 폐지됐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행정명령 형식으로 수퍼 301조를 3번 발동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특허 소송의 진행과정을 두고 수퍼 301조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불공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뒤 무차별적인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배심원단이 비전문가 집단이라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삼성전자가 가진 통신 표준 특허 자체 대부분을 무효라고 판단한 점은 보복조치 성격이 짙다"면서 "클린턴 행정부 이후 수퍼 301조가 가동된 적은 없지만 이번 소송을 지켜보면 기업의 특허권이 새로운 무역장벽과 통상 공격 무기로 가동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돼 우려된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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