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 과표구간 손 못대
금융종합과세도 기대 이하
박재완 장관도 한계 토로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8일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을 들여다 보면 일단 맥이 빠진다. 그간 논란이 됐던 소득세 과표 구간 조정과 종교인 과세 등 핵심 사항들이 쏙 빠졌기 때문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초부터 이례적으로 개정 예고까지 해가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400페이지에 달하는 세법 개정안 자료 어디에서도 이 같은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에따라 이번 개정안은 정권 말 잡음을 내지 않기 위해 정부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장관도 개정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큰 정치 일정(대선)을 앞두고 솔직히 한계를 느꼈다"고 자인했다.
◆ 세법개정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정부의 입장과 달리 여야 모두 현재 '3억원 이상'인 소득세 최고세율(38%) 적용 구간을 '1억5000만원 이상'(민주통합당)이나 '2억원 이상'(새누리당)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8일 박 장관과 만나 "소득세 과세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으니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올 하반기 국회 심의과정에서 관련 내용이 전격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세간의 관심사인 성직자 과세도 '시행령만 고치면 된다'는 게 재정부의 공식 입장인 만큼, 대선 정국에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또 다시 쟁점으로 부각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경제 활력, 재정 건전성, 미래 복지 대비 등 세 가지를 신경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 활력보다는 세수 감소 방지에 좀 더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세제 개편안은 '부자ㆍ대기업 증세' 기조가 뚜렷하다.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으로 세수 효과가 1조6600억원이라고 밝혔는데, 이 중 99.8%가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몰린다.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에 대한 세금 감소 효과는 2400억원,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세수 증가 효과는 1조6500억원에 이른다. 이를 뒷바침하기 위해 대기업이 각종 감면혜택을 받더라도 최소한 내야 하는 법인 최저한세율을 14%에서 15%로 올렸고, 대주주의 주식양도차익 과세 범위도 기존보다 대폭 강화했다.
◆ 연봉 5000만원 이하만 세제혜택? = 이번 세제 개편을 통해 재형저축(근로자재산형성저축) 등 각종 금융상품 가입 시 세제 혜택을 받는 대상자가 연봉 5000만원 이하로 한정돼 연봉 5000만원 이상 직장인들의 세테크 기회가 막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봉이 1억원이 넘는 사람도 가입할 수 있었던 장기주택마련저축은 폐지됐기 때문이다. 재형저축이란 이름의 비과세 상품이 새로 생겼고, 만기 10년 이상인 장기펀드에 돈을 넣으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연봉 5000만원 이하 근로자와 연소득 3500만원 이하 사업자만 대상이 된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기존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인하한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학계에서는 2000만원으로 대폭 낮추자고 건의했는데 반영되지 않았다. 재정부는 2000만원으로 낮출 경우 세 부담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어 3000만원으로 절충했다고 해명했다. 정치권은 1000만원으로 낮추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어 국회에서의 공방이 예상된다. 기준금액이 인하됨에 따라 금융소득 종합과세 신고 대상자 현재 4만9000명 수준에서 추가로 4만~5만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재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서민·중산층에 대한 지원이 미약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납세자연맹은 "역진성이 높은 간접세 비중을 늘리거나 그대로 둔 채 소득공제 혜택을 축소해 서민과 중산층의 세 부담만 가중시켰다"고 주장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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