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인간을 믿는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확신하는가? 물론 인간이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닐뿐더러 이는 어떤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물음이다. 그럼 질문을 바꿔 보자. 인간은 왜 서로 죽이는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일까? 여기, 이 흥미로운 질문에 불을 붙이는 텍스트가 있다. 2011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 1위, ‘일본 서점 대상 2위’를 수상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다카노 카즈아키의 <제노사이드>. 인류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가능성을 SF 스릴러로 그려낸 이 소설은 인간의 잔학성과 도덕성의 역학관계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제목인 ‘제노사이드’는 종교나 인종 혹은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 절멸시키려는 행위를 의미한다. 대표적 사례인 홀로코스트와 소설의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는 아프리카 내전의 수많은 살육전 등 같은 인간에 의해 자행된 참혹한 인간 학살의 역사는 역사상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그리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속해온 인류의 진짜 얼굴이 어떠한가를 묻는다.
블록버스터 베스트셀러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
이야기는 인간보다 진화한 새로운 생물의 출현을 계기로 현생 인류가 종말의 위험을 맞게 되는 데서 시작된다. 아프리카 콩고 오지에서 유전자 변이로 탄생한 이 ‘신인류’는 현 인류보다 지적 능력이 월등히 우월한 존재다. 인간 나이로 겨우 세 살에 불과하지만 컴퓨터 해킹을 통해 미국 전기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고 슈퍼컴퓨터에 의해 고도로 복잡하게 설계된 정보기관의 암호체계를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신인류를 인류의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 작전을 전개한다. 그리고 그를 지키고자 하는 인류학자와 미국인 용병, 일본인 대학원생과 한국인 유학생이 이 거대하고 조직적인 음모에 맞서는 것이 <제노사이드>의 핵심 플롯이다. 미국, 일본, 콩고 등을 무대로 진화론부터 인류학, 면역학과 신약 개발, 국제 정치와 패권주의에 이르는 방대한 지식들이 서스펜스와 액션, SF와 호러 등의 다양한 장르적 장치로 버무려진 이 소설은 지적 카타르시스를 맹렬히 자극하는 잘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하지만 <제노사이드>의 진짜 가치는 이 책이 던지는 사뭇 무겁고 무서운 질문에 있다. 다카노 카즈아키는 우리가 모르는 혹은 알면서도 애써 눈감고 외면해 온 인류의 잔학성을 눈앞에 들이밀며 묻는다. 어째서 우리는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래도 인간이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를 당위의 결론으로 게으르게 대답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이 소설의 탁월한 성취다. 미국 정부는 왜 신인류가 인류보다 진화한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제거하고자 하고, 반면 예거 일행은 인류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그를 왜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가? 자신을 향한 적대와 선의를 동시에 맞닥뜨린 신인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이 다양한 상황과 입장에서 전개되는 내러티브 속에서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이 확고한 논리성은 독자에게도 역시 무거운 고민을 요구한다. 인간이 만든 디스토피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인간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라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역시 <제노사이드>와 겉은 다르지만 본질은 닮은 질문을 던진다. 제노사이드가 인간 본성 속 광기의 증거라면 고담 시를 위협에 빠트린 빈곤과 빈부격차, 그리고 이를 유지하는 사회 구조는 인간의 무력함의 증거다. 어느 쪽이든 인간의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 비극이다. 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미래의 희망이란 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과 다카노 카즈아키의 대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하길 바란다’인 듯하다.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제노사이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인류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잔혹함이 틀림없다. 더욱이 과거에서 배우기는커녕 더 고도화된 살상과 폭력과 차별의 고리로 서로를 옭아매고 있다. 다카노 카즈아키는 이 같은 인간의 잔학성을 통렬히 비판하지만 동시에 예거와 겐토 일행의 헌신을 통해 놀라울 정도의 선의를 가진 인간이 있고 그들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끝내 배트맨이 필요 없는 세상을 희망하고 그 가능성을 평범한 인간들의 각성과 연대에서 찾고자 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 역시 마찬가지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는 지하에 갇혀 있던 경찰들이 밖으로 나와 베인 무리와 맞설 때다. 배트 머신도 배트 수트도 없이 두려움과 가혹한 현실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 이는 전작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제시한 게임에 대한 시민들의 응답과 궤를 같이하는 이 시리즈의 믿음 중 하나다. <제노사이드>에서 인류의 멸망을 막아내는 것도 “아무 담보물도 없이 자기 목숨을 위험에 처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구하려 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선행이었다. 인간의 본성이란 잔학성과 도덕성이 등을 맞댄 샴쌍둥이임을 인정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느 쪽 얼굴을 선택하느냐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제노사이드>의 신인류는 유전자 변이로 탄생했지만 인간은 도덕성과 선의로 말미암아 “일종의 진화한 인간”이 될 기회를 갖는다. 결국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라는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은 100%의 확신이 아니라 간절한 믿음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것이 고도의 능력을 지닌 히어로도 초월적 지능을 타고난 신인류도 아닌 평범한 우리가 공멸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제노사이드>는 섣부른 낙관이나 성급한 회의로 둘러가지 않고 우리의 진짜 얼굴을 직시하게 한다. 아프지만 외면하지 말아야 할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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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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