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와 유사한 기기 사용 장면 눈길..애플 아이패드보다 42년 앞서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우주선 디스커버리호에 승선한 우주인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식사하는 동안 직사각형 모양의 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직사각형 기기는 동영상을 보여주는 등 우주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준다.
1968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이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 소송에서 새삼 화제를 낳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 영화 장면을 증거 자료로 사용해줄 것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요청했지만 루시 고 담당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지난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제작한 영화다. 인류에게 문명의 지혜를 가르쳐준 검은 돌기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목성으로 여행하는 내용이다. SF 영화여서 초현실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우주인들이 지금의 태블릿 PC와 같은 기기를 사용하는 장면이다.
삼성전자가 이 장면을 주요 증거로 채택하려고 했던 이유는 2010년 출시된 애플 아이패드보다 42년 앞서 비슷한 아이디어가 존재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42년 전 큐브릭 감독이 미래의 삶을 예언하면서 태블릿 모양의 소품을 스크린에 담은 것은 아이패드가 애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삼상전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외에도 영국 TV 시리즈 '투모로우 피플'(1973~1979년)도 증거로 사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특별한 힘을 가진 영국인들이 지구와 우주에서 악인들과 싸우는 내용을 담은 이 시리즈에도 지금의 태블릿 PC처럼 생긴 네모난 장치가 등장한다. 이 역시 법원은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두 영화 외에도 '피들러 태블릿'을 증거로 신청했다. 지난 1994년 당시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 살았던 로저 피들러는 미래의 신문은 태블릿으로 전달될 것으로 전망하고 이를 구현한 시제품이다. 생김새가 아이패드와 유사하다.
법원은 이를 증거로 받아들이는 대신 애플의 특허가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을 할 때만 쓰도록 제한했다. 삼성이 애플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근거 자료로는 활용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애플에 승소하기 위해서는 애플 디자인 특허의 유효성을 반박해야 한다"며 "비록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지만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TV 시리즈 '투모로우 피플'을 내세운 것은 이같은 배경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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