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가 한국의 가장 큰 위기라고 한다. 경제성장률 하향곡선은 둘째 치고라도 당장 눈앞에 불을 끄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정부가 내놓은 ‘2012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은 이런 맥락에서 출발했지만 아직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정부가 올 하반기 내놓은 재정규모는 지난해보다 8조5000억원이 늘었다. 나랏빚을 내 추가경정예산을 풀기보다는 기존 예산 한도 내에서 각종 여유자금을 끌어모아 연내 집행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번에 내놓은 규모는 그동안 위기대응을 위해 추경에 편성했던 규모에 비해 높은 편이다. 박재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성장률을 당초 3.7%에서 3.3%, 물가는 3.2%에서 2.8%로 각각 낮추고 일자리는 12만 개가 더 많은 40만 개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놓은 대처법은 크게 7가지다. 글로벌위기 대응, 재정투자 보강, 민간투자 활성화, 미래준비 기틀 확립, 서민금융과 주거비 안정, 일자리 40만개 확대, 2% 대 물가안정세 지속이 주요 내용이다. 이 중 정부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가계부채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한국은행과도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며 “가계부채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많은 통계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서로 분석하고 취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가계부채 종합대책 이후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정부가 낙관하고 있는 지표는 고용과 물가다. 이미 유럽발 경제위기 속에서도 올해 취업자 수는 40만명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경상수지도 그런대로 괜찮고 국제 원자재가격이 비교적 안정세라는 점을 들어 물가상승률을 2.8%로 하향 조정한 이유다.
정부대책 실효성 있을까
많은 전문가가 정부 재정지출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그나마 낙관하고 있는 경제지표도 흔들리고 있는 것은 물론 악화길로 걷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해법만으로 부족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물가 부분이다. 정부가 올 하반기 제시한 일자리는 40만개다. 청년층과 베이비부머 위주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소비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은 상황과 기업조차 지출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정책이 먹힐지 의문이다.
한 그룹사 관계자는 “현재 주요그룹사 대부분이 유럽 위기가 안정될 때까지 지출을 줄이고 있고 내수경기와 일자리까지 좋지 않은 상황인데 과연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무조건 재정을 풀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요건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며 “수출 의존형인 한국기업들이 좀 더 내수에 신경 쓸 수 있는 것이 성장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계대출은 물론 이와 관련된 건설사에 대한 정책도 수긍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으로 내놓은 건설사 지원 정책은 생색내기밖에 지나지 않는다”며 “건설사 줄도산이 문제가 아니라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저 지켜보는 형국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과도하게 묶여 있는 각종 규제를 풀어 해결하는 방법은 이미 늦었다”며 “PF 채권을 정부가 보증해서 지원하는 방법도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이런 정책은 세수와도 긴밀하게 연결됐다. 올해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지만 내년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민간연구소와 국내외 기관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들도 내년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있어 올 하반기와 내년 세입 여건이 악화할 것으로 염려된다”며 “기업의 실적악화와 함께 소비둔화가 이어지면서 세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세수가 줄어들게 돼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경기침체 해법은 ‘심리적 요인 제거’
전문가들은 경제성장률 상승을 견인할 수 있는 단기적인 해법으로 “심리적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내외 위기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 만큼 내수에 집중해 소비심리를 부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 불안요인을 제거하는 방법이 곧 장기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현재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임 위원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위기가 계속해서 겹치면서 소비심리는 물론 기업들까지 얼어붙는 것이다”며 “이런 문제들이 심리를 더욱 악화시키는 상황을 연출시킬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 같은 심리를 높이는 방법으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이 임 위원의 설명이다.
세계경기의 침체가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침몰을 가져올 수 있는 최대의 적인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국민들의 불안심리가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정부의 발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 위원은 “과거도 마찬가지였지만 재정투입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내놓느냐가 중요했다”며 “지금처럼 불안요인이 커질 때는 정부가 직접 보증을 해준다거나 믿을 만한 요소를 전달해주는 것이 불안심리를 떨칠 수 있게 만들고 이는 불황의 원흉인 소비감소를 막아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코노믹 리뷰 최재영 기자 som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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