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기필코/저 슬픈 추억의 페이지로 스밀라네/눈 감은 채/푸르고 깊은 바다/흉어기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목단꽃 붉은 이불을 덮고 /왕표연탄 활활 타오르는 /새벽이 올 때까지/은빛다방 김양을 뜨겁게 품을라네/작은 창 가득/하얗게 성에가 끼면/웃풍 가장 즐거운 갈피에 맨살 끼우고/내가 낚은 커다란 물고기와/투둘투둘 비늘 털며/긴 밤을 보낼라네
권선희의 '매월여인숙'
■ 이 시는 가히 동해를 껴안는 바람의 노래가 아닌가. 구룡포 권선희 시인은 청어가 뛰던 1930년대를 냄새맡은 사람이었던가. 매월당 김시습이 천하 땡중으로 그 동네까지 바싹 다가와 숨어살며 과메기를 뜯던 날들을 알고 있었던가. 은빛다방 김양은 구룡포의 티켓다방 종업원이 아니라, 동해바다 푸른 물길 누비는 그 티켓을 쥔, 청어가 아니었겠는가. 김양의 젖은 머리채를 안고 누우면 바다가 그대로 출렁거려 잠도 못 든 채 새벽에 붉은 해 하나 낳지 않겠는가. 내가 낚은 커다란 물고기,같은 사내. 그 우락부락한 비늘 털털 털어내며 서럽던 옛 매월당의 된장 바른 긴밤처럼 바다와 깊숙히 연애해보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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