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닷가의 하이얀 하이얀 길이다/아이들은 늘늘히 청대나무말을 몰고/대모풍잠한 늙은이 또요 한 마리를 드리우고 갔다/이 길이다/얼마 가서 감로같은 물이 솟는 마을 하이얀 회담벽에 옛적본의 장반시계를 걸어놓은 집 홀어미와 사는 물새같은 외딸의 혼삿말이 아즈랑이같이 낀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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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바닷가의 하이얀 하이얀 길은, 홀어미와 사는 외딸이 시집간 길이다. 죽마(竹馬)를 탄 아이들이 가고, 또 대모풍잠한 늙은이 한 사람이 그 길을 갔다. 대모는 바다거북이고 풍잠은 망건의 꼭대기에 다는 장식품이다. 귀한 풍잠을 했으니 돈 있는 늙은이다. 도요새(또요)는 처음엔 새인 것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구절에 물새같은 외딸이 등장함으로써, 의미심장해진다. 늙은이에게 도요새 잡혀가듯 주춤주춤 걸어가는 소녀. 백석은 신부를 찾으러 가는 이쪽의 아이로, 바닷가를 거꾸로 걸어가면서 안개 가득한 운명의 중심으로 다가간다. 가다가 달디단 우물물로 목을 축이고, 쟁반시계(둥근 큰 시계) 하나가 걸려 있는 그 집에 당도해 혼담을 논의하는 동안, 까닭 모를 슬픔으로 마당을 도는 소년 백석의 모습이, 아즈랑이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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