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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증권업계 '레몬법'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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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증권업계 '레몬법' 도입해야 박성호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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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난(至難)한 주식시장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놓고 한바탕 씨름했던 증시가 겨우 한고비를 넘고 나자 또다시 위기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2000포인트에서 미끄러진 지 이미 2개월이 지났다. 지금까지 고만고만한 반등을 연출했지만 투자자와 증권사,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형국이다. '긴 병구완에 효자 없다.' 증시는 시름시름 앓고 있고 이를 돌봐야 할 투자자는 지쳐 떨어져 나갈 판이다. 환자와 그를 수발하는 가족을 매개체로 먹고살던 증권사는 의사 역할을 포기한 채 지구 저쪽 반대편에서 만병통치약이 불쑥 튀어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부동산 침체, 낮은 예금이자 등으로 투자자는 돈 굴릴 곳이 없어 아우성이고 증권사는 하루 10조원을 넘나들던 거래대금이 반 토막에도 못 미치자 돈 들어올 구멍이 막혔다며 죽을 상을 하고 있다. 결국 위기의 본질은 '돈'이다.


너도 나도 돈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가는 상황에서 증권사에 속속 들어서는 신임 최고경영자(CEO)들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의 일관된 목표는 증권사에 위기의 본질인 '돈'을 벌어주는 것이다. 누구는 소매영업을 강화하겠다고 나섰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양한 상품으로, 일부는 해외시장에서 살 길을 찾겠다고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목 마른 투자자에게 '바닷물'을 먹이려고 하는 CEO와 증권사는 없는지.

일부 증권사는 여전히 투자자에게 주식을 사라고 한다. 펀드에 투자하고 각종 파생상품에 돈을 넣으라고 한다. 목표는 변함없이 수수료다. 투자자와 함께 성장하자는 순백색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한 의지'를 엿보기 힘들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돈'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그래서 '일부'라는 전제를 달고 자본시장경제에 맞지 않게 '선한 의지'를 운운한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제목처럼 거창하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활황장, 거래 폭증의 시기에 증권사들이 어떤 '신뢰'를 투자자들과 쌓아왔는지 살펴볼 시기다. 증권사들은 말한다. "홈트레이딩시스템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등 투자자의 편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데…." 미안하지만 이는 신뢰와 높은 상관관계를 맺지 못한다.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해 놓고 '선의'라고 표현하는 건 이율배반이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크고 작은 사고를 쳤다. 고객의 금융지식 부족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때로는 이를 악용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임직원들도 있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개인의 문제' '불가피한 사안' '금융당국의 몰아치기 검사' 등으로 변명했다. 투자자들은 똑똑해졌다.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구태의 경영으로 여전히 돈 벌기에만 급급한 일부 증권사다. 든든한 모기업을 두고도 성장하지 못한 채 후퇴하는 증권사들, 조그마한 손실에도 벌떼처럼 항의를 하며 금융당국으로 뛰쳐나가는 고객을 둔 증권사 등은 신뢰를 쌓고 싶어 하는 스마트한 투자자를 등한시했기 때문일 게다.


증권사 CEO들은 "현재 60개가 넘는 증권사가 너무 많다.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배는 고파도 증권사가 아사(餓死)할 가능성은 없으니 인수ㆍ합병(M&A)의 길이 제일 유력하다.


금융당국은 투자자들의 똑똑한 돈이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을 가진 증권사에 모여 자연스런 업계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불량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리콜 법안인 레몬법을 증권업계에도 도입해야 한다. 갈증 난 투자자에게 바닷물을 마시게 하는 증권사를 철저히 솎아내 착한 돈, 스마트한 돈이 선한 증권사에 쏠리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좋은 M&A가 이뤄진다.






박성호 증권부장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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