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야당의 주요 정치인이 한 경제단체가 입법 활동을 모니터링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정치권 주변에서 거의 매일 들리는 말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테지만 저는 그 일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논란과도 관련이 좀 있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2008년 이후의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전과는 꽤 달라진 것 같습니다. 자유시장경제야말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최선의 장치라고 주장했던 레이건과 대처의 시대에 대한 회의가 번져나가는 것을 봅니다. 사실 당장 급한 대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그 다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합의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저명한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자본주의가 해답이 아니라 문제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면서 "지금 좌파도 우파도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전혀 모른다"고 일갈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이 일상이 된다면, 그러니까 다시 고성장의 시대는 오지 않고 시장의 큰 변동성이 계속 반복되며 실업과 빈부의 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이 (우리 기대처럼) 가라앉지 않고 오래오래 계속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런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해야만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변신은 쉽지 않고, 특히 과거에 잘해 왔던 주체들의 경우 더 어렵습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큰 성공을 거둔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는 적을수록 좋으며,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신성한 의무이고 사회적 공헌이라고 단언한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단체들이 정부의 섣부른 개입을 경계하면서 규제의 완화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켜야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만약 더 이상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쩌지요? 각 기업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가 모두에게 결코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세계가 되었다면 말입니다. 사실 이런 의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이에 따라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기업들이 최근 하나둘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니레버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니레버는 주주들에 대한 분기 보고를 없애 버립니다. 그리고 단기적 성과 목표를 세우는 대신 아주 이상한 2020년까지의 장기 목표를 세웁니다. '10억명에게 위생용품을 공급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반으로 줄이며, 50만명 이상의 영세 농부들로부터 원료를 조달한다.' 이것이 유니레버의 2020년까지의 전략목표입니다. 한술 더 떠서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직원들에게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면서 연간 목표치의 달성 여부에 연동돼 있던 보상 제도도 폐지했답니다.
유니레버의 주식을 15% 보유하고 있던 헤지펀드들이 이런 전략에 반발하자 최고경영자(CEO) 폴 폴먼은 "우리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단기투자자는 떠나주길 바란다"라고 선언합니다. 결국 헤지펀드들은 유니레버의 주식을 대규모로 팔아치웠고요.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 6월호와의 인터뷰에서 폴먼은 2008년의 위기 이후 세상은 크게 달라졌으며, 이제 기업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비정부기구(NGO)나 정부와 연대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고는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시민운동가의 말 같지요?
물론 아직 유니레버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 회사는 세상이 전과는 달라졌다는 쪽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는군요. 하지만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켜보렵니다. 조금은 응원하는 마음으로요.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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