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늦가을에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올해는 4월부터 한여름 같은 더위가 시작되었다. 지금이 5월인지 7월인지 헷갈릴 정도다. 지난해 늦가을의 더위가 정전 사태를 일으켜서 많은 시민의 피해와 불편을 초래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정답을 다 알고 있지만 문제를 풀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무더운 5월을 보내고 있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울 것이라는데 국민들은 태평하고 한국전력 관계자와 지식경제부 관련 공무원의 속은 타들어간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저렴하다. 심지어 수력, 원자력 등 에너지원이 풍부한 캐나다 같은 나라보다 더 낮다. 전기요금이 워낙 싸다 보니 일반 가정이나 공장 가릴 것 없이 펑펑 쓴다. 그런데 문제는 물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에 나온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1982~2009년 소비자물가는 232% 상승했지만 전기요금은 14.5% 오르는 데 그쳤다. 소비자물가를 감안한 실질 전기요금은 오히려 65.5% 하락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소한의 원가 상승 요인도 반영하지 못한 왜곡된 전기요금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첫째, 경쟁연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전기요금이 오히려 전력 원가 상승 압박을 가중시킨다.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전기 난방이 늘어나는 등 전력으로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전력 소비가 급증하면서 연료비 및 발전소 건설 비용 등 전력 공급 비용을 높였고 이는 장기적인 전기요금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한전은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누적 적자가 8조원에 이르고 있고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만큼 이자 비용이 늘어나 한전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막대한 누적 적자와 금융 비용은 해외 입찰 등에서 불리하게 작용함은 말할 것도 없다.
둘째,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소비량이 OECD 국가 평균의 1.7배에 이를 만큼 전력 낭비를 초래했다. 1인당 전력소비량은 국민소득이 2배 높은 일본과 비슷하다. 지나친 냉난방으로 여름철에는 실내에서 스웨터를 껴입고 겨울철에는 반팔을 입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산업경쟁력을 위해 '산업용 전기'를 주택용이나 일반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제조업 부문 부가가치 대비 전력사용량을 보면 얼마나 전기를 낭비하는지 알 수 있다. KDI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1달러어치의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데 100㎾h를 사용한다고 보면 독일은 45㎾h, 프랑스는 64㎾h, 영국은 46㎾h, 미국은 68㎾h, 일본은 45㎾h다.
셋째, 전기요금이 낮게 유지되는 데 따른 혜택이 대기업 또는 기업농 등에게 집중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를 가진다는 점이다. 영세 농어민 보호를 위해 가장 낮은 가격이 적용되는 농사용의 경우 원가의 38%에 판매된다. 그런데 기업농이나 농수산물 가공 공장, 유통시설 등에까지 확대 적용되면서 이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결과를 낳았다. 원가의 85%에 판매되는 산업용 전기의 경우도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제철 등 대기업과 SK에너지 등 정유업계가 받는 혜택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원가를 반영하는 요금체계로의 개편이 당장 어려우면 적정한 폭의 요금 인상이라도 있어야 한다. 정권 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정권 말기이므로 정말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답을 알고 있는 만큼 지경부와 한전에 필요한 것은 의지와 배짱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기요금 인상 폭보다 더 크게 전기를 아끼려는 작은 노력이면 충분하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