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기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대통령 측근 비리가 하루건너 드러나고, 총선 정국을 뒤흔든 불법 민간인 사찰 은폐 의혹 등 권력과 관련한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정권 말 대기업 옥죄기는 날로 강도를 더하고 있다.
변화의 시기는 공무원 특유의 복지부동 본능이 발동하는 때다. 골치 아픈 일에 손대지 않는 것이 관가의 처세법이다. 차기 정권 출범을 불과 몇 달 앞두고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는 셈이 잦아진다.
이런 가운데 '마이 웨이(My Way)'를 외치는 주무부처 장관들의 행보가 눈에 띈다. 끝까지 소신을 관철하려고 뛴다. '공직의 꽃'인 장관의 자존심도 걸었다. 역대 장관이 어물쩍 넘긴 민감한 사안을 자발적으로 건드리는가 하면 일단 정책의 큰 틀을 잡고 나면 공격적인 드라이브를 건다. 이미 이들 장관의 초점은 차기 국회로 맞춰졌다.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선두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 정권 말, 자리를 지키는 주무부처 수장들이 뚝심 있게 추진하는 현안을 들여다본다.<편집자주>
◆박재완 장관 '종교인 과세'
대개 골치 아픈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정권 말, 대표적인 MB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난제를 붙잡았다. 세제 얘기다.
박 장관은 지난 3월 두 건의 이슈를 링 위에 올렸다. '종교인 과세'와 '소득세 과표 구간 조정' 문제다.
실정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지만 종교인에겐 수 십년 간 소득세를 받지 않았다. 이걸 바로잡으려 하면 으레 '종교탄압'이라는 반발이 일었다.
세원으로서 의미도 크지 않다. 종교인은 대부분 소득이 면세점 이하에 머문다. 종교인이 쓰는 비용은 대개 종단이 부담한다. 월급 성격의 임금은 많지 않다. 월수입이 4인 가족 기준 150만원(연 1800만원) 이하면 소득세를 물지 않는다. 재정부가 국세청의 유권해석 요청에 6년을 침묵한 배경이다.
그러니 박 장관의 종교인 과세 언급은 세정보다 정무에 가까워 보인다. 종교인에게 세금을 걷어 나라살림에 크게 보태겠다는 게 아니라 '공평과세'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함께 들고 나온 소득세 과표 구간 조정도 역대 장관들이 손대기 꺼리던 난제다. 잘해도 표 나는 일이 아닌 데다 섣불리 건드렸다간 시빗거리가 되기 쉽다.
박 장관은 이 문제에 방점을 찍고 싶어한다. '1200만원 이하(6%)'부터 '3억원 초과(38%)'까지 소득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뉜 과표 구간을 위로 조금씩 끌어 올려 떨어진 돈 값을 세율에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박 장관은 그러면서도 면세점은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자연스레 나타날 감세 효과를 고려해 각종 비과세ㆍ감면을 줄일 계획이다.
◆홍석우 장관 '중견기업 키우기'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의 관심은 '중견'에 꽂혔다. 홍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중견기업 육성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6개월 만에 지경부 내에 중견기업국을 신설했다. 틈 날 때마다 "중견기업 정책의 초기 틀을 다진 장관"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중견기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야인' 시절을 보낼 때다. 정통 지경부 출신인 홍 장관은 중소기업청장을 맡으면서 중견기업에 눈을 떴다. 현장에 나가면 매번 듣는 소리가 "중견기업이 되면 중소기업으로서 받던 각종 혜택이 사라져 오히려 불리하다" "중견기업이 되지 않기 위해 회사를 쪼개서라도 중소기업에 머무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견기업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산업발전법에 등록됐다.
홍 장관은 "강한 기업을 키우기 위해선 중간 단계인 중견기업의 인센티브를 늘리고 나아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원만히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들려줬다. 주무부처 장관이 되고서 가장 먼저 지시한 일도 "중견기업과 소통할 수 있는 부처 내 창구를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다.
명분은 좋았지만 국을 신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타 부처와의 신경전이 만만치 않았고, 조직의 인력 재배치 등 신경 쓸 대목이 많았다. 하지만 때 마침 '중견기업을 키우겠다'는 청와대의 정책 방향과 맞아떨어지면서 중견기업국이 당초 예상보다 빨리 자리잡게 됐다.
첫 단추를 무난하게 뀄지만 홍 장관에게 던져진 과제 풀이는 이제부터다. 홍 장관은 "중견기업이라는 용어가 법적으로 명시된 것은 지난해지만, 실제 정책의 원년은 올해"라며 "1300여 중견기업을 위한 맞춤형 해법을 반드시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어 "중견기업 육성은 시대적 소명"이라며 "모든 법에 중견기업 개념을 도입하고 2015년까지 120만개 일자리를 책임질 중견기업 3000개를 키워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채필 장관 '장시간 근로 개선'
이채필 장관은 고용노동부 출신으로 처음 노동 행정의 수장을 맡았다. 지난 30년 동안 고용행정을 다뤄온 전문가로서 이 장관이 추진하는 일이 장시간근로 개선이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만들고, 근로자의 삶의 질도 높이자는 취지로 마련된 이 정책이다.
이 장관은 지난해 6월 취임 직후부터 여기에 올인하고 있다. 그가 근로시간 줄이기에 역점을 두는 것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고용부 분석 결과 휴일근무만 없애도 일자리가 새로 25만개 창출된다.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40시간을 근무해야 하지만 잦은 야근과 휴일근무로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노동자는 줄어든 근로시간 대신 가벼워진 월급통장을 걱정하고, 경영진은 생산량이 줄어들까 우려한다.
이 장관은 현 정부의 임기가 6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는 최근 야근이 잦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 4개 회사의 경영진을 만나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또 이들 회사가 가져온 근로개선안에 대해 "미흡하다"며 퇴짜를 놓았다. 고용부는 지난해 완성차 4개사에 대해 근로시간 준수를 집중 점검한 데 이어 올해는 제조업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계획이다. 교대제로 전환하는 사업장에 대해 컨설팅과 지원금을 주는 내용의 당근도 마련했다.
이 장관은 휴일근무 시간을 야간근무에 포함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19대 국회가 열리는 대로 재발의하기로 했다.
◆권도엽 장관 'KTX 경쟁체제'
고속철도(KTX) 경쟁체제 도입이 때아닌 주목을 받으며 권도엽 국토해양부장관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KTX 경쟁체제는 국토해양부가 밀어붙이고 정치권과 코레일 노조 등이 극명하게 맞서는 형국이다.
권 장관은 경쟁체제 도입 필요성을 주창하기 위해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3일부터 이틀간 독일에서 열린 국제교통포럼에서도 철도경쟁체제의 당위성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경험을 공유하며 추진 중인 하부 철도 기반시설과 상부 철도차량 운영의 분리가 효율적이라는 소신을 더 굳히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권 장관은 "지난 113년간 철도운영은 코레일이 독점해 왔다"며 "이제는 운영을 민간에 개방해 운영자간 경쟁을 통해 요금을 인하하고 서비스를 개선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특히 권 장관이 18대 국회에서 19대로 넘겨 버린 'KTX 경쟁체제' 도입에 적극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과거부터 법적으로 경쟁체제 도입을 진행해 왔고, 그것을 이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권 장관은 "이미 2002년 국민의 정부부터 논의해온 철도체계 정비의 마지막 단계로서 경쟁체제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어서 절차를 적법하게 실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과 항공, 전자산업 등과 마찬가지로 경쟁을 통해 서비스와 경쟁력을 상승시키려는 것이 주 목적"이라고도 했다.
또 "이미 법적으로 추진절차가 정해졌던만큼 국회동의 등이 필요 없이 행정절차만으로 바로 추진 가능하다"면서도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듣고 향후 문제가 없도록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국민이 받는 서비스가 개선되는 것인데도 정치적 목적으로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첫째도, 둘째도 국민의 서비스 향상을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승객의 안전, 승객의 편리함, 승객이 원하는 서비스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며 경쟁체제 도입 전도사로 나선 권 장관의 행보가 주목받는 대목이다.
◆김석동 위원장 '우리금융 민영화'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우리금융 민영화'라는 과제에 대해 일종의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우리금융 민영화를 통해 그간 회수하지 못한 공적자금(7조원)을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요즘 금융권ㆍ언론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금융지주 매각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선 "정권 말에 이런 민감한 문제를 추진할 수 있겠냐"는 비관론이 많지만 김 위원장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회의론에 귀 기울이다간 원칙을 잃게 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우리금융 민영화를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영원한 대책반장' 이란 닉네임이 꼭 들어맞는다.
김 위원장으로선 우리금융 매각이 절실한 이유가 또 있다. 그는 우리은행이 금융지주로 재편됐을 때 정관을 만들었을 정도로 우리금융의 설립에 깊이 관여한 공무원이다. 그가 느끼는 책임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기자들에겐 이런 말도 했다. "우리금융이 환란(금융위기) 극복을 잘 했고, 건전화도 잘됐다고 자랑을 하면, 질문을 받는다. 왜 안 파냐고. 그런 질문 받으면 답이 없다."
금융산업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금융에 새주인을 찾아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김 위원장은 보고 있다. 글로벌 은행들과의 진검 승부를 위해선 예금보험공사의 관리를 받는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그는 우리금융 민영화에 대한 반대논리에 맞서 싸움을 벌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노조와의 대립각을 세우는 게 대표적이다. 우리은행 노조와 금융노조가 관치의 화신이라며 우리금융 민영화를 주도하고 있는 김 위원장을 공격했지만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게 공직자의 사명이다. 공적자금을 회수하는데 노조가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김 위원장 특유의 뚝심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김관진 장관 '참모총장 군령권'
김관진 국방장관은 올해 안에 '국방개혁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국방개혁법안은 지난해 6월 상정 이후 10개월 표류하다 18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다.
국방개혁법안은 각 군 참모총장에게 작전지휘권(군령권)을 부여하고 합참의장 지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 등 모두 5개. 군당국은 국방개혁안이 표류하면 오는 2015년 12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이후 군 작전에서의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전작권 환수에 대비해 효율적 지휘체계를 갖추려면 짧아도 3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다.
당초 군당국은 지난달 24일 열린 18대 국회 마지막 임시회가 개혁법안 통과의 마지막 고비라 판단하고 총력을 기울였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4ㆍ11총선 전 직접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수차례 참석했고, 차관을 비롯한 고위관계자들이 시간 날 때마다 의원회관을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직접 나서서 "국방개혁은 현대전을 위한 제2의 창군"이라며 여러 차례 힘을 실었다. 하지만 18대 국회에서는 결국 처리되지 못했다.
김 장관은 19대 국회 통과는 어렵지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군출신 인사들이 대거 이번 국회에 대거 포진했기 때문이다. 4ㆍ11총선에서 당선된 군 출신 인사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새누리당에는 강창희ㆍ김성찬ㆍ김종태ㆍ송광호ㆍ송영근ㆍ정수성ㆍ한기호ㆍ황진하 등 9명이다. 민주통합당에는 백군기ㆍ민홍철 당선자가 있다.
지난달 국회 국방위원회에 참석한 뒤 국방부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 장관은 "법안의 틀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는 것을 원칙으로 다섯 개 법안 중 꼭 필요한 법안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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