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 주고/그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았지요.//평양성에 해 안뜬대두/난 모르오,//웃은 죄밖에.
■ 시집 '국경의 밤'에 실린 이 시는 김동환의 눈부신 감수성을 느끼게 한다. 황급히 손사래치는 여인네의 변명이 오히려 의심을 키우는 게 웃음을 자아낸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공개하는데, 그래 낯선 남자와 외로운 여인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그런 거 외에 뭐가 있을꼬. 짧은 대화, 그리고 샘물 떠주면서 서로의 움직임이 전해졌던 것, 그리고 인사하는 그 사이. 수만 볼트의 스파크가 일어났는지 알 게 뭔가. 그러면서 이 여인네는 드디어 오버를 한다. 평양성에 해 안뜬대도 모른다면서, 그 사내에게 웃음을 지은 걸 고백하지 않는가. 말해놓고 여인네는 후회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얄미운 시인은 그 고백을 지워주지 않는다. 그녀의 웃은 죄는 사정없이 공개된다. 김동환의 시는 어느 화장품 광고의 카피로도 등장했다. 여인네의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보여주면서 '웃은 죄'라고 제목을 달았다. 캬. 멋지다.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 밖에." 그런 죄 가끔 짓고 살았으면.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