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센터 사장으로 변신한 전직 보험컨설턴트 김진여씨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에 자리 잡은 126㎡(38평) 남짓한 카센터. 이곳에서 이휘도라는 남자가 새로운 인생길을 걷고 있다. 꿈이었던 카센터 사장이 돼 누리는 소박한 행복. 그 누구도 부러울 게 없다. 영화 ‘심장이 뛴다’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된 카센터는 실존 공간이다. 그런데 지금껏 익히 알고 있던 카센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는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카센터란다. 이 이색적인 공간을 통해 현실에서도 제2인생의 꿈을 이룬 여인이 있다. 신선한 발상으로 금녀의 벽을 깨버리고 과감히 뜻을 밀어부친 ‘뚝심의 여인’을 만났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눈을 의심했다. 여기가 정말 카센터 맞아? 핑크색 간판부터 시작해 핑크빛 소파, 녹색 나무들이 그려진 벽화, 커피 머신과 구수한 커피향,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 화장대와 색색가지 매니큐어, 여성잡지들, 추억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 어린이 놀이시설까지. 아담한 공간에 펼쳐진 참으로 낯선 풍경, 코스 요리로 치자면 ‘애피타이저’다. 흥미를 자극해 취재하고픈 ‘식욕’을 돋우니 말이다.
칙칙한 분위기에 기름 냄새 풀풀 나고 기름때 찌든 바닥이 연상되는 여느 카센터와는 전혀 딴판이다. 카페라고 오해하기 십상인데, 옆문으로 이어지는 차량정비 작업장을 보고나서야 의심을 거뒀다. 이 공간도 범상치 않긴 마찬가지다. 분홍색인 자동차 정비용 리프트를 본 적 있는가. 게다가 한쪽 벽면의 예쁜 그림은 각종 기계와 공구들이 자아내는 삭막함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었다.
이 감성 넘치는 이색 카센터의 콘셉트는 ‘여성 중심 카센터’, 이름 ‘미카’, 주인은 김진여(40)씨. 다부진 체구와 고운 인상의 40대 여성이었다. 어라? 남자가 아니다. 정비업소 사장은 거의 다 남자들인데…. 그는 “카센터와는 거리가 먼 보험회사 직원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때부터였다. ‘메인 요리’로 그의 흥미진진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여성 입장서 카센터 이용 불편했던 경험에서 출발
2007년 6월 18일. 그가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낸 날짜다. 새로운 출발의 시작을 알리는 그 날을 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입사 10년차에 접어들던 해,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이유는 여성을 위한 카센터를 차리겠다는 것.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생뚱맞은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그의 말에 가족들의 반대는 심했다. 김씨는 외부 기업체 교육 강의를 담당하는 대형 보험회사의 CS(고객만족) 컨설턴트였다.
“컨설턴트 직업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평소 인생 설계 관련한 책들을 보면서 직장생활 10년쯤 한 후엔 다른 일을 해보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더 새롭고 멋진 일을 찾아 나선 거죠.”
사업 아이템이 왜 하필 여성을 위한 카센터였을까. 그는 운전은 잘하지만 차에 문외한이었다. 그저 여성으로서 카센터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을 겪었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회사 업무 특성상 차량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정비업소를 찾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불만이 쌓였다.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하다 보니 ‘아직 괜찮은데 괜히 부품을 바꾸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정비를 마친 후에도 ‘혹시 바가지를 쓴 것은 아닌지’ 의구심만 커졌다.
“여성 운전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카센터는 여성에게 여전히 불편하고 어려우며 친절하지 않은 공간이에요. 여성을 위한 차별화된 서비스를 갖추고 여성 중심으로 운영되는 카센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한번 해보자’는 결심을 했죠.”
맨 먼저 넘어야 할 산은 가족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김씨는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고 털어놨다. 회사에서 하던 대로 며칠간 사업계획서를 만들었다. 관련 자료들을 모아서 파워포인트를 작성했고 시댁·친정 식구들을 모두 집으로 초대했다.
벽에 스크린을 걸고 정장 차림으로 식구들 앞에서 1시간여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의 전략은 성공했다. 모두들 그의 확고한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되레 김씨의 열정과 굳은 도전 의지에 감복하고 든든한 응원군이 돼 줬다. 김씨는 남편의 허락이 떨어진 바로 다음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꿈을 향해 거침없는 하이킥을 했다.
여성을 위한 차별화 서비스 위해 다양한 분야 공부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카센터를 차리려면 자동차정비산업기사 이상의 자격이 필요했다. 그는 2007년 7월, 회사를 나온 지 보름도 채 안 돼 직업학교 자동차정비학과에 입학했다. 차량의 ‘보닛’이라는 기본적인 용어조차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비 관련 단어에 이론까지 배우는 게 절대 쉬울 리 없었다. 외우고 복습하고 또 외우고….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어서 6개월 만에 자동차정비산업기사 자격증을 따내 카센터 개업 자격을 갖췄다. 경영에 대해 배우려고 전산회계와 전산 세무회계자격증도 땄다. 여성 중심의 카센터를 열 심산이었으니 뭔가 차별화된 서비스가 있어야 했다. 그는 고객에게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원가 대비 만족도가 높은 서비스가 뭘까 고민해 봤어요. 커피 한 잔이 그렇더라고요. 종이컵에 주면 200원 짜리지만 머그잔에 주면 4000원짜리 고급 음료가 되잖아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 고객을 위해 풍선을 선물할 수 있는 풍선아트를 배운 것이나 네일 코너를 마련한 것도 적은 비용으로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업장은 집 근처 지역의 대로변에 잡았다. 보증금, 인테리어, 기계 및 집기 구입비를 포함해 창업 자금 2억6000만원을 들였다. 부담을 줄이고자 은행 대출 없이 그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모아둔 목돈만으로 해결했다. 인테리어 작업에만도 두 달이나 소요됐다. 고객센터(14평)를 정비공간(24평)과 분리해 쾌적한 환경을 만들고 벽 그림 그리기, 작업장 선반 및 간판 만들기까지 일일이 직접 함으로써 공을 들였다.
‘미카’라는 상호도 그의 작품. 아름다울 ‘미’(美)와 자동차를 뜻하는 영단어 ‘카’(car)를 결합해 손수 지었다. 법인도 혼자 만들었다. 3년 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준비 끝에 2010년 9월, 드디어 그가 꿈꾸던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카센터가 문을 열게 됐다.
섬세하고 정직한 서비스에 마니아 고객도 생겨
차가 수리되는 동안, 멋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즐긴다. 한켠에 마련된 네일 코너에서 손톱을 다듬고 형형색색 매니큐어를 발라본다. 놀이터에서는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며 공놀이도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미카의 여성 고객들이 누리는 특별한 서비스들이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서비스만이 다가 아니었다.
진짜 여성을 위한 차별화된 서비스는 ‘정직하고 꼼꼼한 정비’. ‘설명하지 않은 정비는 환불해드립니다’는 미카의 차량정비 서비스와 그의 경영 신조를 관통하는 핵심 모토다. 차량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가장 주력하는 서비스다.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이 특징. 수리 내역은 서면으로 출력해서 주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작업은 정비 전과 후를 비교한 사진으로 촬영해 프린트해 드려요. ‘이 부품이, 이런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교체했다’는 내용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볼 수 있어 반응이 매우 좋아요.” 매출 올리는 데 급급해 먼저 부품을 교체해놓고 나중에 청구하는 정비업소가 대부분이지만 김씨는 반드시 고객에게 부품 교체에 대한 상황을 말해주고 반드시 고객이 ‘예스’를 한 경우에만 작업에 들어간다. 김씨는 불필요한 정비로 인한 고객들의 바가지 피해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정비 관련 비용을 일체 공개하고 있다.
미카의 정비 비용은 현대차 카서비스센터를 기준으로 70% 가격대로 맞췄다. 엔진오일 등의 소모품들은 정가제를 원칙으로 한다. 부품 교체 시, 정품 사용 여부에 따라 카센터의 수준과 신뢰도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차량 정비 외에도 무료 견적, 미등과 브레이크등 무료 교체, 포인트 제도 등의 부대 서비스도 다양하게 실시한다. 미카에서 실제 정비 업무는 두 명의 베테랑 정비기사가 맡고 김씨는 운영 및 정비에 대한 고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서비스를 전담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의 마음을 알아주는 세심한 서비스 덕분에 여성 고객들의 호응이 높다. 서비스에 감동한 나머지 ‘미카폐인’이라는 열혈 고객들도 생겨났다. 주변에서도 유명해졌다. “입소문이 많이 나서 인지도가 높아졌어요. 업계에서는 새로운 시도이다 보니 관심을 많이 갖더군요. 벤치마킹하러 온 업체들도 몇 있었어요. 얼마 전에는 모 자동차정비 업체에서 자사 직원을 우리 카센터로 보내 엔진오일을 갈게 하면서 정보를 조사하러 왔더라고요.”
여성 중심 카센터를 내세운 게 단점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단다. “미카 고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에요. 여성들이 이용하기 편하면 남성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성 고객들의 말을 들어보니 여기 오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네요. 매장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남성분도 봤어요.”
자동차정비·생활 접목한 또 다른 ‘무한도전’ 준비 중
김씨의 카센터가 문을 연 지 이제 1년 반 정도. 초보사장님의 사업 성적표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싶다.
“아직도 과정에 있다고 봐요. 생활비 쓰는 데는 지장이 없을 만큼 법니다. 창업 초기이고, 운전자 대부분이 단골 정비업소가 있어 아직은 고객 수가 큰 폭으로 늘고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한번 다녀간 고객은 단골이 되고 다른 손님을 소개해주는 일이 많아 고무적입니다.”
난생 처음 하는 사업. 시행착오를 참 많이 겪었다.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한 건데 운영하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직원 2명 인건비에 600만원이 들고 운영비 등을 포함해 초기 한 두 달간 마이너스 800만원씩. 적자가 심각했어요.”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동력은 미카만의 차별화된 서비스였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제부터 약간의 궤도 수정을 통해 전진할 생각이다. 다음 달 초,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 확장 이전해 카페형 콘셉트를 강화한 새로운 모습의 미카를 선보인다. 이전하는 곳은 대출을 받아 직접 부지를 구입해 마련한 3층짜리 건물. 지금보다 2배 규모로 넓어지고 유동인구가 많아 고객 유도 효과가 더 클 것이란 기대다.
“돈만 벌려고 했다면 우울했을 지도 모르죠. 꿈을 실현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그의 다음 꿈은 뭘까. “‘미카인’을 만들고 싶어요. 자동차는 생활 필수품이면서 차를 고치는 사람들은 무시받고 소외당하는 것 같아 속상해요. 정비사가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를 확립하고 모든 정비사들이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고 싶은 바람입니다.”
그는 또 다른 ‘무한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 운전자 교육, 미용·네일아트 등 자동차 정비와 생활을 연결하는 원스톱 서비스 실시, 어린이 교통안전센터 만들기 등을 구상 중이다.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대한 조언도 남겼다. “머릿속에만 있는 꿈은 성공률 0%입니다. 한 발 내딛으면 그 확률은 50%가 되죠. 계속 꿈꾸고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어요. 나중에 노후를 맞아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해 후회하지 않았으면 해요. 용기를 가지세요.”
인터뷰를 마친게 점심 무렵이 지난 때였지만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전한 조언들까지 디저트로 잘 소화시켜 배를 든든히 채워서다. 그의 블로그에는 이런 간판이 걸려 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카센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카센터 중에 꼭 미카여야 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저는 오늘도 새롭게 원두를 볶고 놀이터를 청소하고 작업장의 오일을 닦습니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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