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처럼 신용카드가 온통 대한민국 경제ㆍ사회 문제의 중심에 선 적도 없을 것이다. 물론 2002~2003년 카드대란 당시에도 신용카드가 '신용'이 아닌 '불신(不信)'의 대명사로 치부됐던 경험이 있다. 카드사의 금고가 텅 비어 현금서비스를 중단하자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요동을 쳤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카드사의 자산 수준은 카드대란이 일어났던 2003년과 비슷하지만 당시 28% 수준이던 연체율은 현재 2% 미만으로 줄었다.
국민에게도 신용카드는 이제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선 존재로 생활 깊숙이 자리잡았다.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매일 편리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제품이나 용역의 판매활동에 종사하는 사업자에게도 신용카드는 이미 매출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숫자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지급결제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카드 사용액은 540조794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7조580억원(9.5%) 증가했다. 하루 평균 신용카드 이용금액은 1조4816억원으로 2010년(1조3527억원)보다 9.5% 증가했다. 일평균 신용카드 사용건수는 1806만건으로 전년보다 13.4% 늘었다. 발급 장수는 1억2214만장으로 경제활동인구 1인당 4.9장, 국민 1인당 2.5장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질서가 공동체의 사회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듯이 신용은 경제활동에서 윤활유가 되고 경제활동 그 자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신용 거래 시스템의 총아인 신용카드(Credit card)는 본원적으로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고객이 가진 신용의 크기만큼 신용구매력이 결정되고, 신용판매 대금을 매월 착실하게 결제해 신용이 검증되면 구매력을 그만큼 더 늘려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신용카드에 대한 부정적 측면만 강조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이라거나 또는 '신용카드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차별' '과당경쟁'과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카드업 종사자의 한 명으로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꼭 필요한 신용카드가 왜 이처럼 긍정적 이미지보다 부정적 이미지로 고착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물물교환 시절을 벗어나게 한 화폐의 교환가치나 가치저장 기능에 대한 소중함을 우리가 잊고 살듯이 현금을 들고다니는 불편과 위험을 줄이고 현금이 없을 때도 소비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신용카드의 소중한 가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소중함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편함은 오래가고 편리함은 곧 잊는 우리의 이기적 본능 탓은 아닐까.
카드를 사용하면서 겪은 부정적 경험 때문에 신용의 참모습이 아닌 허상만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카드 모집인에 의해 강요된 카드 가입 경험, 상환 능력을 뛰어넘는 한도 부여, 신용불량 경험, 카드사의 관리실패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 불안, 설명하기 힘든 카드수수료 차별 정책 등을 겪었다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모두 일그러진 카드의 허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신용카드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들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어떤 형태로든 신용카드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차분하게 신용카드의 본질적 기능과 효익을 되새겨보고, 그것이 주는 부정적 기능이나 이미지를 어떻게 불식시켜 나갈 것인지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신용카드란 디바이스를 두고 제로섬 게임,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이 지속된다면 신용사회의 정착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기의 KB국민카드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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