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대구 상원고 2학년 투수 김성민이 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와 57만 달러에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다. 대한야구협회는 지도자 및 선수등록규정 제10조 4항을 근거로 그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규정에는 ‘본 협회에 등록된 학생선수 중 졸업학년도 선수만이 국내·외 프로구단과 입단과 관련한 접촉을 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하고 프로구단과 입단 협의 또는 가계약을 한 사실이 확인되면 해당 선수의 자격을 즉시 유보하고 제재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대한야구협회는 징계에 대해 규정을 지키는 한편 조기선수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촌극은 왜 벌어졌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박찬호 효과’다. 유망주들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활약을 보며 꿈을 키워왔다. 동경하던 무대에서 받은 제의를 뿌리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글쓴이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을 때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한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야구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라는 마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두 번째는 높은 계약금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국내 프로구단들보다 비교적 많은 액수를 제시한다. 선수들은 더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계약서에 사인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세 번째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계산이다. 어린 나이에 꿈의 무대를 도전해보고 실패하면 국내리그로 돌아오겠다는 심산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김성민과 같은 사례는 쉽게 발견된다. 봉중근은 1997년 신일고를 중퇴하고 애틀란타에 입단했다. 박찬호, 김선우, 서재응, 최희섭 등도 대학 재학 중에 태평양을 건너갔다. 이들은 대한야구협회의 규정대로라면 모두 규정 위반자들이다. 국내리그에서 뛸 수 없는 것은 물론 지도자로도 활동할 수 없다. 하지만 실력 앞에서 벽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이들은 올림픽,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고 현재 프로야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종목들은 어떠할까. 축구에는 언제부턴가 조기유학 붐이 불었다. 선수들은 해외 구단 유소년 팀에 입단한 뒤 자연스럽게 유턴해 국내리그를 누빈다. 외국에서 활동하더라도 국가대표로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 골프의 미셸 위는 최고 대우를 보장받으며 14세에 프로에 입문했다. 그 과정에서 법적 장애나 제재는 가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제 계약 분쟁에서 미국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야구위원회와 대한야구협회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김성민을 징계하기보다 현실적인 제도 개선에 더 힘써야 한다. 선수 지명 시기의 조절, 우선 지명제도 도입 등은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해외 진출 선수들이 국내로 복귀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빠른 귀환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해외에 진출하더라도 본인의 판단으로 빠른 복귀를 꾀한다면 야구인들의 걱정과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해외 진출을 결심한 선수가 까다로운 조건에 주저앉을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충분히 다른 편법을 동원할 수 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해마다 열 명가량의 선수들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만 대부분은 메이저리그 문턱에도 오르지 못한다. 국내 복귀 문이 열리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야구계는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제재가 아닌 해결책을 내놓는다면 국내리그는 분명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만약 김성민이 메이저리그 간판으로 성장한다면 그때도 그를 계약 위반자로 볼 것인가. 그때쯤 다른 평가가 내려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유망주들의 꿈을 위해 국내 야구계는 조금 더 관대해져야 한다. 해외 진출의 길을 무조건 막기보단 지금이라도 후배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닦아줘야 한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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