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을 바라보는 LG 팬들의 마음은 기대보다 걱정이 커 보인다. LG 구단은 지난 시즌 뒤 또 한 번 변신을 선언했다. 김기태 수석코치에게 지휘봉을 넘겨주며 팀 쇄신을 꾀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사령탑 교체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LG는 2002년 선수단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킨 ‘야신’ 김성근 감독을 시작으로 이광환, 이순철, 김재박, 박종훈 등 슈퍼스타 감독들을 모두 경질시켰다.
10년이 흘렀지만 프런트의 힘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 같은 ‘프런트 야구’에서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바로 고위층의 행보다.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는지 알 수 없지만 부임하는 인사마다 비슷한 움직임을 드러낸다.
이순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6년의 일이다. 그해 1월 선수단은 미국 하와이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섬에 막 발을 내딛었을 때 프런트는 선수단에 깜짝 선물을 내놓았다. 메이저리그 최고 지도자로 손꼽히는 레오 마조니 애틀란타 투수코치의 강의 및 현장지도였다.
당시 선수들은 하와이에 막 도착한 터라 시차 적응에 애를 먹고 있었다. 도착일 바로 강의를 듣는 건 몇 번을 생각해도 무리였다. 그러나 프런트는 선수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내 선수, 코칭스태프를 모두 불러 모아 강의를 진행시켰다. 선수들의 바이오리듬은 결국 엉망이 되고 말았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던 의지의 선수들마저 피곤을 호소할 정도였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마조니 코치의 강의에 있었다. 통역을 담당하던 친구가 야구를 알지 못해 질의응답의 시간이 동문서답의 한마당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마조니 코치의 일방적인 요구로 강의도 계획된 시각보다 일찍 끝나버렸다. 필자가 당시 강의 내용 가운데 기억하는 건 그렉 매덕스와 톰 글래빈에 대한 칭찬뿐이다. 영양가 높은 조언은 거의 전무했다고 자부한다.
마조니 코치는 다음날 야구장에서 또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이내 펼쳐진 교육에 필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마조니 코치는 전지훈련 첫날 피칭을 강행하는 투수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나이스 피칭’을 연발했다. 몸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을 던진 투수들은 갑작스런 칭찬에 모두 의아해했다. 한 수 배워보겠다던 선수들의 일념은 그렇게 꺾여버렸고 마조니 코치는 비슷한 칭찬을 몇 차례 반복한 뒤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선수단이 얻은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투수들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몸을 만들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마조니 코치의 초빙은 분명 투수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프런트의 배려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훈련을 방해하는 요소를 초래했다. 메이저리그 코치의 개인 일정에 선수단 전체의 일정이 조정되는 안타까운 모습까지 연출하고 말았다.
김기태 감독이 부임한 올해도 프런트의 답답한 행보는 여전하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주축 선수들을 모두 놓쳤고 특별한 전력보강도 이뤄내지 못했다. 주축 선수와의 재계약을 원하지 않는 감독은 없다. 김기태 감독은 분명 프런트에 이택근, 조인성, 송신영 등과의 재계약을 간곡히 요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단은 너무 쉽게 이를 외면해버렸다.
남아있는 선수들의 불만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팀 사기는 구단이 도입한 신연봉제 탓에 바닥으로 떨어질 위기에 놓였다. 기본적으로 하위권에 분류되는 LG 전력에 누수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김기태 감독의 한숨은 점점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기태 감독은 시즌을 치르기도 전에 선수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LG는 가장 인기 있는 프로 구단 가운데 하나다. 필자는 과거 성적을 회복해 LG가 프로야구 성장에 주축돌이 되길 희망한다. 하지만 계속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건 필자만은 아닌 것 같다.
마해영 IPSN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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