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멀어 나 이제사 고향에 돌아왔네//아픈 몸 좀 눕히고 잃어버린 풍경의 시력 회복하러 시골에 있는 누님댁에 내려와 며칠을 골방에서 뒹구네/그러나 고향은 고향이되 더 이상 고향이 아닌 이곳에서 이제 나 몸도 마음도 쉽게 쉬지를 못하네//시골 농협에서 나누어준 달력을 치어다보며 가까스로 일주일을 버티네(.......)
박정대
'눈먼 무사' 중에서
■ 가끔 고향을 예찬하지만, 그렇다고 고향에 눌러살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귀향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원천을 돌아보는 것일 뿐, 이미 타향살이가 체질화된 삶을 되물리긴 어려운 것이다. 살펴보면 고향도 옛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몇 십년 그 마을의 페이스 대로 흘러오고 바뀌어온 것이다. 어머니를 늙게 하고, 할머니를 앗아가버린 그 시간. 하지만 삐걱이는 옛날 침대에 누워 어느 여름의 얼룩이 있는 천장을 바라보면 그까짓 몇 십년 그냥 뛰어넘어 옮겨앉을 것 같다. 농협 달력의 큰 숫자 아래의 작은 띠동물을 살피고 있노라면, 그 퇴행하는 생각이 달콤하다. 박정대는 아픈 몸으로 돌아온 그곳에서, 눈을 감고 옛 무사들의 숲을 헤맨다. 금생이 아니라 몇 개의 전생을 넘어서 칼을 차고 달리던 그 시절로까지 퇴행한 모양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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