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스페인어로 평화라는 뜻) 공항은 도착과 동시에 가슴이 답답하고 뒷머리가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
남미대륙의 중심고원 해발 4000m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고산증세다. 외국인들은 산소결핍증으로 두통과 식욕감퇴,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혈압이 높은 사람은 코피가 터진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런 증세를 피하려면 술과 담배는 금물이며 뜨거운 샤워도 자제해야 한다.
해발 3800m의 호텔에 여장을 푸니 관광이고, 골프고 다 집어치우고 하루 빨리 이 고통의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공기의 중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고산증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라파스골프장으로 향했다. 진흙 고드름이 종유석처럼 서있는, 마치 달표면과 유사해 이름 지어진 '달의 계곡'을 지나 골프장에 도착했다.
클럽하우스에는 '지병이 있거나 건강에 자신이 없다면 플레이를 자제해 달라'는 포스터가 등록 창구 위에 붙어 있고 천천히 라운드를 해달라는 문구도 덧붙였다. 코스를 바라보니 철분과 염분이 많은 토질이라 그런지 회색의 돌들이 조각작품처럼 곳곳에 널려있어 삭막하기 그지없다. 대신 페어웨이를 연해서는 유칼리아나무가 일렬종대로 서 있다.
해발 6882m의 일리마니산이 흰눈의 고깔을 뒤집어 쓴 채로 코스 북쪽편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골프장은 안데스산맥의 해발 3277~3342m 사이에 있고 1912년에 건설됐다. 18홀(파70) 규모, 블랙티 기준으로 7000야드가 넘는다. 현지 캐디들은 공기 밀도가 적어 평소보다 30야드가 더 나가니 세 클럽정도는 짧게 잡으라고 조언한다.
1번 티잉그라운드에서 드라이브 샷을 날리니 300야드나 나가 마치 투어프로가 된 기분이다. 캐디가 조금만 더 날리면 국경을 넘어 칠레로 공이 날아간다고 농담을 던진다. 기분이 좋아져 두통과 호흡곤란 증세를 금방 잊어버렸다. 코스는 평탄한 지형 위에 만들어져 있으나 아웃오브바운즈(OB)지역이 많아 잘못 친 샷은 모두 계곡 아래로 날아가 버린다.
압권은 12번홀(파3ㆍ150야드)이다. 티잉그라운드에서 보면 왼쪽에 잡석으로 이뤄진 해저드가 있어 일단 130야드 이상을 정확하게 쳐야 한다. 9번 아이언으로 티 샷 해 버디를 잡았지만 18홀 내내 거리 조정이 되지 않아 스코어는 말할 것도 없고 공을 12개나 잃어버렸다. 새소리는 들을 수가 없고, 식사도 압력가스렌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도 세계 최고로 높은 골프장에서 라운드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회원제코스라 회원을 동반하거나 여행사의 소개가 있어야 플레이할 수 있다.
글ㆍ사진=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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