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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는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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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선의 골프 뒷담화⑧ 골퍼와 캐디 ‘애정남’式 정의

캐디는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일 뿐이다 Illustration Design by En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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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프 선수들은 캐디를 ‘15번째 클럽’이라 부른다. 시합 때 들고 나갈 수 있는 클럽의 개수는 모두 14개이지만 좋은 캐디를 만나면 또 하나의 클럽을 갖고 다니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힘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가 모처럼 필드에 나가 라운딩 때 만나는 캐디와는 여러 모로 차이가 있다.


필자는 미국 LPGA프로선수로 직접 뛰었기 때문에 전문 캐디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이를 토대로 일반적인 캐디는 어떤지 10만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골프카페 등을 서핑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살펴보니 재미있는 얘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필드에 나가 몹시 떨리고 공도 안 보이는데 캐디가 급하게 서둘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우선 눈에 띄었다. 캐디가 ‘이렇게 쳐라, 저렇게 쳐라’ 코치하는 것이 불쾌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10만원에 이르는 캐디 피(fee)에 비해 서비스가 만족치 않다는 얘기도 많았다. 이른 아침,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나왔다는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눈길을 끌었다.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지만 실제로 그런 캐디를 만난 당사자들은 몹시 불쾌할 것이 뻔하다.

9번 아이언을 달라고 하면 6번을 주고 심지어 카트 안에서 내리지도 않고 꾸벅꾸벅 조는 캐디까지 있었다고 하니 오랜만에 기대에 부풀어 필드에 나간 아마추어 골퍼들로서는 그야말로 기분을 망쳤을 법 하다.


사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본다면 캐디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골프장은 정해놓은 라운딩 시간이 있다. 예를 들면 티타임 간격이나 홀마다 정해진 시간이 있기 때문에 팀원 중 한 명이 공을 찾는데 시간을 많이 사용하거나 그린에 12번 만에 공을 올리면서도 매번 연습 스윙을 서너번씩 하는 아마추어 골퍼를 만나면 캐디들은 해당 골프장의 경기과나 캐디실에 호출돼 몹시 야단을 맞게 마련이다.


늑장 플레이를 하면 경기과의 사람들이 골퍼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손님. 조금만 더 스피드업 해 주세요’ 나 ‘걸음을 빨리 걸어주세요’가 전부다. 하지만 캐디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지인인 남자캐디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인홀이 끝나고 인코스로 들어갈 때 시간표를 찍는데 정해놓은 시간보다 늦는 경우, 청소를 하거나 다음 가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캐디들이 플레이어를 닭 쫓듯 쫓는 것도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여자 아마추어(아줌마골퍼)들은 필드에 나갈 때 마다 캐디언니들이 한마디씩 하는 원 포인트 레슨에 ‘골프가 향상되는 것 같다’며 오히려 필드에서의 잔소리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필드에서의 레슨은 티칭프로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다. 프로가 보는 실수의 원인과 캐디가 보는 실수의 원인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티칭프로는 실수의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근원적 문제를 지목할 수 있기에 레슨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캐디입장에서 보는 실수의 원인은 티칭프로와 다를 수 있다. 때문에 레슨프로와 캐디의 레슨이 엉켜 혼란스러워 하는 골퍼들도 종종 보게 된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필드에 나갔는데 그린에 홀 컵까지 25야드 남은 거리에서 7번 아이언을 꺼내자 캐디가 샌드를 치라며 내게 말했다. 평평한 라이에 굴리는 샷이 더 확률이 높아 7번을 달라고 하자 ‘차라리 퍼터로 하라’며 프로인 나를 가르치려 하는게 아닌가?


어이없어 하는 내게 캐디는 "나는 이 골프장에서 하루에 한 번씩 라운딩을 하고 지금까지 나 보다 잘 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이 말에 동반했던 분이 “이 분이 바로 프로다” 라고 하자 그 캐디는 “내가 이 골프장에서는 프로보다 잘 한다” 는 말로 응수를 했다. 캐디의 넘치는 자신감 자체를 나쁘다 하기는 어렵지만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술 냄새를 풍기며 나왔다는 캐디를 대하는 골퍼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캐디를 만난 분께 물어보니 나인 홀이 끝나고 캐디 마스터실로 들어가 교체를 요구했고,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불편함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한번 라운딩을 할 때 지불되는 캐디 피는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며 그에 맞는 수준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정말로 마음에 드는 캐디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런데 이렇게 실망하는 일이 잦다면 캐디에게 기대는 습관을 조금만 덜어내면 어떨까? 예를 들면 남은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고 (카트로 이동하면서 나무목을 보거나 카트에서 내릴 때 캐디에게 물어본다) 클럽 서너 개를 미리 준비해 가면 다시 교환하는 불편함을 덜 수가 있다. 그린 주변에서도 피칭 한 개만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라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피칭. 샌드. 퍼터 등 최소한 3개 이상의 클럽을 손에 쥐고 가는 센스는 라운딩의 여유와 팀의 빠른 플레이를 유도해 오히려 캐디로부터 더 많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사실 아시아에서는 캐디가 공의 마크를 타깃에 맞춰 주기도 하는데 골퍼 역시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스스로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돈 주고 캐디는 뭐하냐는 생각을 하는 대신 스스로 라인업을 할 때 퍼팅기술이 향상된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스스로 직접 볼을 맞추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높낮이를 보게 돼 경사를 읽게 되고 잔디의 결까지 읽게 되니 골퍼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이다.


프로들이 캐디를 섭외하고 결정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거리 감각이 좋은 캐디, 그린 위에서 경사를 잘 읽는 캐디, 라운딩을 하며 선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캐디(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캐디를 선호한다). 아니면 아예 말 한마디 없이 가방만 매는 캐디 등 선수의 성격에 따라 캐디를 선호하는 성향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그린 위에서 라이를 잘 보는 캐디를 선호한다. 현재 LPGA에 최고의 몸 값은 콜린이라는 캐디인데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스카웃하고 싶은 캐디가 바로 그다. 그는 과거 박세리, 박지은 선수의 캐디를 ‘역임’한 바 있는데 지금은 폴라클레이머의 전문 캐디로 맹활약중이다.


그가 최고의 캐디인 이유는 골프 코스를 구석구석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는 연습장에서 연습하고 캐디는 골프장 곳곳을 누비며 그린의 스피드를 재고 또 잰다. 그런 그가 최고의 몸값을 받는 것에 대해 단 한 사람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선수는 콜린의 여행 경비를 모두 지불하지만 아까워하지 않는다.


캐디는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일 뿐이다

그가 그 돈보다 더 큰 몫을 거뜬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캐디들이 내 몫을 다하기 위해 더 나은 서비스 개선을 해야겠지만 동반하는 골퍼들도 골퍼가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둔다면 보다 여유있고 즐거운 라운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민선 프로 minnywear@gmail.com
LPGA멤버, KLPGA정회원, 자생 웰니스센터 ‘더 제이’ 헤드프로,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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