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 22회 SBS 밤 9시 55분
지금까지 <뿌리깊은 나무>가 던진 질문은 명확했다. 이도(한석규)와 정기준(윤제문), 서로 다른 두 지도자가 꿈꾸는 조선 중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는 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으로, 드라마는 한글로 백성들에게 권력을 나눠주려는 이도와 사대부들에 의한 ‘엘리트 정치’를 꿈꾸는 정기준의 가치관을 계속해서 비교했다. 그리고 어제 방송된 22회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 한 회였다. 스스로 흔들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중, 백성들을 지켜줄 수 있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이도는 소이(신세경)를 비롯한 나인들이 밀본에게 잡혀간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정기준은 한글이 밀본과 자신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점점 흔들리며 한글 유포 방지에만 더욱 집착했다.
이어 <뿌리깊은 나무>는 두 사람의 공동체를 통해 뚜렷한 대답을 들려줬다. 소이와 강채윤 및 천지계원들의 목표는 변함없이 한글이지만, 정기준이 길을 잃은 이후 이신적(안정환)과 심종수(한상진), 한가(조희봉)와 도담댁(송옥숙)의 목표는 제각기 달라졌다. 살아남는 것(이신적)과 스스로 권력이 되는 것(심종수), 밀본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한가, 도담댁)은 하나의 대의로 수렴되지 못한 채 분열을 일으켰다. 결국 이 작품은, 스스로 불안에 잠식된 채 대의를 잃어버린 지도자는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공동체를 유지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하여 정치를 단지 서로 다른 욕망이나 이념의 싸움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의 뿌리 깊은 불안”에 주목하여 풀어나간 <뿌리깊은 나무>가 내놓은 답은 문제적이고 매혹적이다. 이념의 프레임에 쉽게 갇히는 이 시대, 이 작품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