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흥순 기자]11m 거리에서 키커와 골키퍼가 정면 대결하는 페널티킥은 이론상으로 키커에게 절대 유리한 승부다. 공이 골문을 통과하기까지 0.5초가 채 걸리지 않는 반면 골키퍼가 날아오는 공에 반응하기까지는 최소 0.6초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울산 수문장 김승규에게 통계는 의미가 없었다. 김승규는 26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과의 K리그 2011 챔피언십 플레이오프경기에서 전반 두 차례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매직쇼’를 선보이며 울산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김승규는 챔피언십에서 여섯 차례 PK대결을 펼쳤다. 지난 20일 수원과 준플레이오프에서 연장 후반 교체 투입된 김승규는 승부차기에서 마토에게 첫 골을 허용했다. 골은 들어갔지만 정확한 예측으로 몸을 날리며 키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두 번째 키커 염기훈과 이어진 양상민, 최성환과 대결에서는 상대를 교란시키는 몸동작으로 연속 실축을 이끌어내며 3-1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포항과 플레이오프는 더 극적이었다. 주전 골키퍼 김영광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가운데 김승규는 올 시즌 첫 선발출전 기회를 잡았다. 전반 8분과 23분 포항이 얻어낸 두 번의 페널티킥 찬스에서 모따와 황진성을 상대로 눈부신 선방을 펼쳤다. 부상으로 한 경기도 선발로 나서지 못했던 김승규가 가장 극적인 순간 영웅으로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김승규는 지난 2008년 6강 플레이오프에서 김영광과 교체 투입돼 프로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승부차기 접전을 펼친 상대도 포항이었다. 김승규는 포항의 1·2번 키커였던 노병준과 김광석의 슈팅을 막아내며 4-2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승부차기 전문 골키퍼'라는 수식어를 얻은 김승규는 공교롭게도 3년 만에 만난 포항에 다시 한 번 비수를 꽂았다.
그는 경기 후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안돼서 경기 감각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며 “초반만 잘하자고 생각했는데 페널티킥을 내줘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페널티킥은 잘 막는 방법도 있지만 상대를 유인하는 방법도 있다”며 “모따를 그 쪽으로 차도록 유도해서 막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호곤 감독은 이날 경기 최고 수훈갑으로 주저 없이 김승규를 선택했다. 김 감독은 결승전에서 김영광과 김승규 카드를 저울질하며 깊은 고민을 안게 됐다.
연속 선방으로 팀을 결승으로 이끈 김승규. 그는 “김영광이 빠진 상황에서 경기를 잘 치르고 결승에서 김영광이 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밝혔다.
한편 울산은 이날 승리로 내년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최종 확정했다. 오는 30일과 12월 4일, 정규리그 1위 전북과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챔피언 결정전 1,2차전을 치러 최종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스포츠투데이 김흥순 기자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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