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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총리+성공한 사업가+스캔들제조기=베를루스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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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8일 사임의사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탈리아 사람답게 정렬이 넘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이탈리아 역사상 세 번째 장수 총리=그는 2차 대전후 이탈리아 정치사상 최장수 총리였으며, 이탈리아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는 세 번째로 길게 총리직을 수행하는 동안 성추문과 부패 등으로 온갖 욕을 먹었으면서도 총리직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 인물이다.

최장수 총리+성공한 사업가+스캔들제조기=베를루스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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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9월29일 생인 베를루스코니는 한국 나이로 75세의 고령 정치인이다. 그러나 현재 그의 외모나 그가 보인 행적은 나이와 다른 남다른 ‘정력’을 과시해왔다.

그는 1994~1995년, 2001~2006년, 2008년~현재까지 총리직에 올랐다.


그는 정치인치고는 아주 늦은 나이인 59세이던 1994년 정치에 입문했는데 이후 고속으로 입지를 넓혔고 보수 중도 우파의 대표 정치인으로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다.


그는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잘나가는 기업인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최대 방송국인 ‘미디어셋’을 가족 지주회사를 통해 소유하고 있다. 이 방송사는 베를루스코니와 그가 1965년 결혼한 첫째부인 카를라 엘비라(Carla Elvira) 사이에서 낳은 마리나와 피에르실비오,절친인 페델레 콘팔로니에리가 경영하고 있다.


이 방송사 때문에 그는 언론을 통제한다는 비난을 자주 받았고, 선거때마다 이행충돌을 피하기 위해 방송사내 그의 자산을 매각하겠다고 공약했으니 지키지 않았다.


◆스캔들 제조기 베를루스코니=밀라노 은행원 가정에서 태어난 베를루스코니는 밀라노의 스타탈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61년 졸업했다. 희한하게도 베를루스코니는 당시 의무였던 1년간의 군복무 요구를 받지 않았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페델레와 함께 그룹을 만들어서 크루즈선에서 남자가수로 활동하며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다.


최장수 총리+성공한 사업가+스캔들제조기=베를루스코니? 노래부르는 실베오 베를루스코니(사진=슈피겔온라인)



훗날 그는 이탈리아 축구단 AC밀란의 구단가를 작사했고 2003년과 2006년 나폴리 가수와 함께 앨범 두 장의 가사를 쓰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세리에 A클럽인 AC 밀란 소유주이기도 하다.


정열맨 이탈리아 사람답게 그는 바람도 많이 피웠다. 1980년 여배우 베로니카 라리오와 연인관계를 맺어 세 자식을 뒀다.


1985년 첫 부인과 이혼하고 1990년 라리오와 결혼했다. 이 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그는 또 세 자녀를 뒀다. 그러나 2009년 5월 라리오는 이혼소송을 내겠다고 선언해 그의 결혼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젊은 여성들과 줄기차게 바람을 피운 게 화근이었다.


최장수 총리+성공한 사업가+스캔들제조기=베를루스코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다이아몬드 장식 황금목걸이를 선물한 18세 여친(사진=슈피겔온라인)



그는 자식들의 생일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으면서도 2009년 그를 ‘아빠’라고 부르는 노에미 레치지아의 18번째 생일 파티에는 가서 라리오가 욕을 퍼부었다. 그는 또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황금 목걸이를 그녀에게 선물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는 또 2010년에는 젊은 여성들과 ‘난잡한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이같은 사실은 파티에 1만 유로를 받고 벌거벗은채로 ‘붕가붕가’라는 벨리 댄스를 춘 모로코 태생의 17세 벨리댄서이자 매춘부인 ‘루비 부라쿠오리’가 3000유로를 훔친 혐의로 5월27일 붙잡혀 드러났다. 그녀는 당시 17세로 미성년자였다. 그녀의 성 서비스는 이해 2월에서 5월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최장수 총리+성공한 사업가+스캔들제조기=베를루스코니? 모로코 출신의 벨리댄스겸 매춘부 루비 부라쿠오리(사진=슈피겔온라인)



이해 5월 밀라노경찰이 그녀를 체포했을 때 베를루스코니는 몇 차례 전화를 걸어 그녀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의 질녀라고 주장하며 석방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탈리아 세 번째 부자 베를루스코니=정치인이 되기전 베를루스코니는 사업가로서 거부를 쌓았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는 2010년 기준으로 신문과 방송,출판,영화. 금융과 보험,스포츠 분야에서 90억 달러를 소유한 이탈리아 3대 부자로 평가됐다.


베를루스코니의 주력 회사인 ‘미디어셋’은 3개의 전국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탈리아 전국 방송의 대략 절반 정도를 담당한다. 푸블리탈리아는 이탈리아 선도적인 광고대행사다.그는 이탈리아 최대 출판사인 아르놀드 몬다도리 에디토레에 지분을 보유 하고 있다.


그의 형 파올로 베를루스코니는 중도우익신문 ‘일 지오르날레’를 소유,경영하고 있는데 친 베를루스코니 경향을 보이고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또한 이탈리아 10대 비상장사이며 미디어와 금융업을 하는 피닌베스트의 창업자이자 대주주이기도 하다.


베를루소코니는 또한 엔니오 도리스와 함께 이탈리아 최대 금융 보험그룹인 ‘메디올라눔’을 설립했다.


베를루스코니는 1960년 대 말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밀라노 동부 교외인 세그라테에 1만500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밀라노 두에’를 건설했다.


그는 1973년 이 아파트단지에 서비스하는 조그만 케이블 방송사를 차려 이듬해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이후 두 개의 채널을 사들였고 1977년 밀라노 도심으로 방송사를 옮겨 공중파 방송을 시작했다.


베를루스코니는 1978년 그의 최초의 미디어 그룹인 ‘피닌베스트’를 차렸고 1983년까지 5년 사이 1130억 리라(5830만 유로)를 벌었다. 자금출처는 그동안 검찰이 수없이 조사를 했지만 복잡한 지주회사 제도를 채택한 탓에 아직도 드러나지 않았다.


피닌베스트는 곧 동일 프로그램과 구성을 가진 지역TV 방송국망으로 확장해 이탈리아 공공 전국방송인 RAI가 독점한 전국 방송 체제를 깨버렸다.


베를루스코니는 1980년 이탈리아 최초의 민영 전국 방송인 카날레5를 개국했고 1982년에는 로스코니가문에서 이탈리아1을,1984년에는 몬다도리가문에서 레테4를 각각 사들였다.


그는 이탈리아 최초의 유일 상업 TV제국 출범을 위해 이탈리아 사회당의 연줄을 활용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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