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한국감정원으로 물량 몰아주면서 한국감정평가협회 중심 감정평가사들 최악 상황 내몰려...이런 가운데 국민은행 자체 감정평가사 15명 선발, 담보평가 직접 처리,시장 축소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감정평가업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개발이 크게 줄면서 감정평가 시장이 감소한데다 정부와의 갈등까지 겹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감정평가사 불신을 해소하고 공신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감정평가업계를 압박했다.
한국감정평가협회가 해오던 평가 물량을 한국감정원에 점차 몰아주는 내용으로 감정평가사들이 극구 반대하고 있다.
한국감정평가협회는 정부 안을 놓고 지난달 17일 열린 협회 임시총회에서 회원 72%가 반대해 유상열 당시 회장이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지난해 김원보 전 협회장이 사퇴한데 이은 두번째 협회장 사퇴다.
그러자 국토부는 곧 바로 지난달 19일 관보 고시를 통해 한국감정평가협회가 단독으로 수행하던 감정평가 타당성 조사를 한국감정원에 맡기도록 했다. 법 개정을 감정평가사들이 반대하니 이번에 관보 고시라는 행정 행위를 통해 감정평가업계를 보복한 조치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국토부, 감정평가협회 물량 감정원에 몰아줘
국토부는 우선 감평협이 맡던 감정평가 타당성을 한국감정원이 맡게 해 공정성을 높이기로 했다.
또 감정평가협회가 수행하던 공시지가와 공시가격 등 부동산 가격 공시업무 총괄 기능은 한국감정원이 도맡게 된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관련 내용을 고시하고 오는 2013년부터 감정원이 가격공시 점검·검수 업무와 통계분석, 도서·도표 작성 등을 관할하게 했다.
감정평가정보체계 관리 업무도 앞으로 감정원이 맡게 된다. 감정평가정보체계는 감정평가 결과를 취합·정리한 데이터 베이스로 현재 감정평가협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월세가격동향, 주택가격동향, 지가변동률, 상업용빌딩 임대사례 조사 등 부동산 가격 동향 조사 및 통계 기능도 한국감정원으로 점차 일원화하기로 했다.
특히 감정평가협회가 해온 지가변동률(연간 180억원)과 임대사례 조사(35억원) 등 물량이 감정원으로 옮겨가면 개인감정평가사는 물론 감정평가법인들이 크게 어려워지게 됐다.
◆국토부, 감정평가사 자격대여 의심자 10명 업무 정지 등 징계
이와 함께 국토해양부는 최근 감정평가사 징계위원회를 열어 자격대여 의심자 10명에 대해 2명은 업무정지 1년 이상,8명은 업무정지 1년 미만의 징계를 의결했다.
이로써 감사원이 지난해 12월 '서비스산업 선진화 추진실태 점검'을 거쳐 국토부에 통보한 자격증 대여 의심자 170명 중 43명에 대한 징계가 확정됐다. 이 중 위반 정도가 심한 5명은 자격등록취소,4명은 2년 업무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국토부는 평가사 12명에 대해 추가로 주의 · 경고 조치를 내릴 예정이어 자격증 대여 등으로 징계를 받는 감정평가사는 55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징계 대상 감정평가사들은 주로 금융권에 근무하고 있어 감정평가법인 근무가 불가능함에도 법인 소속 평가사로 등록한 후 대가성 보수를 받거나 자격증 대여기간을 평가사 경력에 포함하는 등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 감정평가법인은 자격증 대여를 통해 법인이나 지사의 설립 · 유지에 필요한 감정평가사를 충족하거나 소속 평가사 수에 따라 배정되는 부동산 가격공시 조사 물량을 과다하게 배정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자격증을 부당하게 활용한 평가법인에 대해 이달 설립인가 취소,업무정지(과징금)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또 지난 8월 감사원으로부터 통보받은 230명의 공공사업 보상 부실 · 과다 평가 의심자에 대해 오는 12월부터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국민은행, 올해 감정평가사 15명 채용,자체 감정평가...평가 시장 잠식
국민은행은 올해 15명의 감정평가사를 채용, 담보물건에 대한 감정평가를 하고 있다.
이는 국민은행이 감정평가사 수수료를 줄이겠다는 판단에 따라 종전 감정평가사들에게 맡기던 담보평가를 직접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종전 감정평가사 2~3명을 채용, 감정평가사들 평가서를 심사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담보평가 수수료를 은행이 부담해야하는 법원 판결 이후 담보물건에 대한 감정평가를 자체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연간 100억~200억원에 이른 감정평가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감정평가사들은 “연간 이익만 수조원을 내는 국민은행이 감정평가 수수료 100~200억원에 이른 것을 먹겠다고 자체적으로 감정평가를 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동반성장 원칙에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감정평가협회, 감독기관인 국토부와 최악의 갈등 구도
한국감정원을 제외한 감정평가업계는 감독기관인 국토해양부가 이처럼 몰아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지난해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김원보, 유상열 전 회장이 낙마하는 사태를 맞은 감정평가협회는 진퇴양난 입장에 처했다.
정부가 종전 한국감정평가협회 시장 파이를 한국감정원에 몰아주면서 시장 상황이 악화된데다 국민은행 등 민간시장 여건도 여의치 않아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내년이 되면 감정평가업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발주 공사 축소와 경기 침체로 민간 시장까지 줄어든 가운데 은행들 마져 자체 감정평가를 해 감정평가업계가 아사직전"이라면서 "이런 가운데 정부가 잇달아 보복성 조치를 내려 문을 닫아야 할 입장"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박종일 기자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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