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약속> 6회 SBS 월-화 밤 9시 55분
폭탄은 터졌고, 이제 모두가 전쟁터로 불려나왔다. “자살 폭탄을 짊어진 놈” 같은 얼굴로 버티던 지형(김래원)은 결국 향기(정유미)에게 결혼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향기는 물론 양가 부모들에게도 황망하기는 마찬가지다. 한편, 서연(수애) 역시 안간힘을 쓰며 알츠하이머와 전쟁을 벌이지만, 자꾸 기억을 놓친다. 6회 만에 <천일의 약속>은 서연과 지형의 이별, 서연의 발병에 이어 지형의 파혼 선언까지 세 번째 국면을 맞이했다. 놀라운 진행 속도와 탄탄한 이야기의 밀도만큼 대단한 건 그 시간 동안 인물들 중 누구 하나 놓치지 않고 캐릭터와 설득력을 부여하며 무대 위로 불러 낸 김수현 작가의 저력이다. 여전히 지형을 용서할 수 없는 시청자들도 있지만, 비열하고 비겁하다고 욕을 먹든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이해받든 드디어 그도 주인공으로 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 김수현 작가는 묻는다. 각자의 입장 혹은 윤리관에 따라 달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안의 폭탄이 터졌을 때, 우리는 각기 어느 방향으로 몸을 던질 것인가.
많은 걸 가졌지만 그 모두와 다 바꿔도 갖고 싶은 이의 배신 앞에 무너지는 여자와 아무리 남루한 인생이라 해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병 앞에 무너지는 여자가 있다. 둘 중 누가 더 불쌍하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에게 버림받았기에 단 하나의 사랑도 신파가 될 수밖에 없어 포기한 여자와 “자식이 애비를 웃음거리로 만들겠다고?”라며 호통 치는 부모가 있기에 단 하나의 사랑도 쉽게 붙잡을 수 없는 남자가 있다. 둘 중 누가 더 안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젊은 나이에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그녀를 향한 남자의 순애보. 이 비극적이어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의 파장 안에서 여러 인물들이 울고 소리치고 비난하고 변명하고 있다. 서연에게 닥친 불행과 부유한 이들의 일상은 드라마 같은 일이지만 그 속에서 제각기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얼굴은, 우리가 살면서 언젠가 지었거나 짓게 될 표정과 닮았다. 그래서 가장 드라마적인 화법으로 지극히 통속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