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없다지만, 살아보니 살 수 없는 게 있긴 있더군요. 벌써 짐작이 가시죠? 네, 그래요.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몸은 사서 곁에 묶어 둘 수 있을지언정 마음만큼은 돈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 아마 향기(정유미) 어머니 오현아(이미숙) 씨도 익히 알고 계시지 싶어요. 지난번 남편 노 이사장(박영규)을 향한 “그래서 딴 살림을 열두 번이나 차렸느냐”는 눈 흘김이 허투로 던지는 강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끊을 수 없는 성형 중독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천금을 지니고 있어도 헛헛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거죠. 겉보기엔 부족할 것 없는 삶이나 남몰래 평생을 애면글면 속을 끓여 왔거늘 내 속으로 낳은 딸자식까지 남자 마음 하나 못 얻어 만날 그 모양이니 열불이 나실 만도 합니다.
향기 씨를 보면 속이 안 터질 수가 없긴 해요
남들이 휴대폰의 딸 사진을 보고 예쁘다 칭찬할 때면 “추물은 아니죠”라고 심드렁하니 답하시지만 실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인물인데다가 성품이며 예의범절 또한 예사롭지 않은, 잘 자란 처자라는 거 어머니가 모르실 리 없지요. 그래서 생판 남인 제가 다 답답했습니다. 신혼여행 보름씩 못 간다는 것쯤은 이해 못할 것도 없어요. 아무리 업체 대표라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는데 정도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결혼 전에 친구들에게 얼굴 한번 보여주면 안 되겠느냐는 통사정을 딱 잘라 거절하는 거나, 집안 모임이며 웨딩 촬영 자리에서도 뭐 씹은 양 마뜩치 않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나, 그럼에도 괜한 트집이라며 오히려 엄마에게 핀잔을 주는 향기 양을 보면 멍텅구리, 맹추 소리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죠.
유치원 다니는 어린애가 집에 돌아와 “엄마 나는 누구누구가 좋은데 걘 내가 싫나봐. 나랑 안 놀아줘”하고 징징대며 울어도 가슴이 무너지기 마련인데 결혼을 앞둔 과년한 딸이 사윗감에게 대놓고 면박이나 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약이 오르시겠어요. 어릴 때야 아이스크림이나 장난감으로 꼬드겨 본다지만 다 큰 성인이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하기야 지금껏 붙들어 둘 수 있었던 것도 다 모종의 사탕발림 덕인지도 모르겠네요. 에두를 것 없이 그냥 말씀드릴게요. 한 마디로 오현아 씨 사윗감 박지형(김래원)은 몹쓸 인간입니다. ‘항상 더 사랑한 사람이 죄인인 건가봐‘라는 노래 가사도 있지만 그렇다고 저 좋다는 여자 마음을 그렇게 함부로 휘둘러도 되나요. 그간 해바라기하는 향기 양에게 상처를 주기 어려워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는 모양새를 고수해온 것 같은데요. 그게 다 앞뒤 잴 만큼 재본 요량이라 나쁘다는 거예요. 도리 때문이라는 변명을 앞세우지만 실은 따님 입장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다 본인에게 여러모로 이익이다 싶어 딱히 거부를 하지 않았지 싶어서 말이죠.
자식 농사가 역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지 싶어요
어쨌거나 이제 본인 입으로 파혼을 거론한 상황이니 앞으로 말끔히 정리하는 일만 남았네요. 바라는 것, 얻고 싶은 것, 언제나 다 이루고, 손에 넣고 살아온 향기 양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이겠지요. 그러나 내 아무리 간절히 원하는 일이라도 상대방이 원치 않는다면 그 마음을 돌아볼 줄도 아는 진정한 배려를, 싫다는 사람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돌려놓을 수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어머니께서 가르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밍크니 자동차니 그림이니 그딴 것들로 어찌 해볼 생각은 접으시고, 치졸하게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 부모를 압박할 어리석은 생각 또한 아니 하시길 바라요.
모두가 힘을 합해 하루라도 빨리 향기 양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할 텐데, 쉽지는 않아 보이죠? 솔직히 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왜 딸을 그처럼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기르셨는지,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향기 양 같이 순수한 마음의 처자가 드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요가, 필라테스, 요리, 클리닉 순회며 친구들과의 수다로 하루를 소비하는 그 또래 처자 또한 흔치 않다는 거, 아실지 모르겠어요. 왜 자신은 온데간데없이 남자의 미래에다 본인의 미래를 얹으려 들었는지, 그저 딱하기만 합니다. 오현아 씨 스스로도 밟아 오신 길이고, 그로 인해 남모를 고통을 겪어 오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따님만큼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기든 제 힘으로 발 딛고 살 수 있게 이끌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댁네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애 좀 써 보려고 합니다. 자식 농사가 역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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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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