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⑨ 그룹 밖 활동에서의 승부욕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외부 활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각종 재계 단체장, 위원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릴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업무 외에는 대외 활동에 나서기를 선천적으로 싫어하는 기질 탓이다. "정 회장이 맡아달라" "정 회장께서 나서야 한다"는 수많은 요청에도 정 회장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자리 욕심에 스스로 절제를 해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외부 활동에 완전히 담을 쌓았던 것은 아니다.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정몽구 이름 석자가 박힌 직함은 여럿 있다. 양궁협회와 컨테이너공업협회, 강관협회, 표준협회, 여수엑스포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200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맡고 있는 직함은 양궁협회 명예회장, 여수엑스포 조직위 명예위원장 정도다. 컨테이너공업협회장은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역임했으며 강관협회장은 1985년 현대강관 사장 시절에 선임됐다. 1999년에는 산업계 표준화와 품질경영의 선도자로 18대 표준협회장에 올랐다.
짧은 인연으로 끝난 이들 직함과 달리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자리가 있다. 특히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 취임을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이어진 그의 양궁사랑은 오늘날의 '세계 최강' 대한민국 양궁을 만드는 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 또한 여수엑스포 유치 당시에는 유치위 명예위원장으로서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7개월간 지구 세바퀴를 도는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행보에서 드러난 현장 중심 리더십과 강한 승부욕, 스포츠 과학화 등은 오늘날 현대차를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킨 정 회장의 성공 DNA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기술, 품질을 중시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으며 한번 추진한 것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품질경영, 현장경영, 뚝심경영 등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바로 그 요체다.
◆또 다른 세계 1위 꿈, 양궁협회장 맡고 물심양면 전폭지원
1984년, L.A.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을 지켜보던 정 회장(당시 현대정공 대표)은 무릎을 쳤다. 올림픽 경기를 통해 양궁이야 말로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중요한 국가적 행사를 앞둔 시기였고 양궁은 주요 전략종목 중 하나였다. L.A.올림픽 이듬해인 1985년 정 회장은 대한양궁협회 회장에 취임하며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기업 대표, 정치인들이 각종 스포츠단체 회장에 취임하며 홍보수단으로 활용하거나, 사회공헌을 위해 명목상 비인기종목의 협회장을 맡는 일이 많았다. 이 때문에 초창기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 회장의 고민은 오직 하나에 집중돼 있었다. 대한민국 양궁을 명실상부한 세계 1위로 만들겠다는 것. 정 회장은 취임 후 200억원대의 대규모 지원을 본격화하며 대한민국 양궁이 곧 세계 표준이 되는 작업을 개시했다. 협회 관계자는 "현지훈련 예산에 대한 결제를 올리면 '넉넉하게 쓰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줄곤 든든한 조력자가 돼주신 분"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힘입어 대한민국 양궁은 L.A.올림픽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금메달 16개, 은메달 9개, 동메달 5개 등 총 30개의 올림픽 메달을 거머쥐었다.
◆'품질=기술' 최우선, 레이저 활 개발 지시 스포츠 과학화
"부품 기술의 발전이 곧 완성차의 경쟁력이다." "품질이 곧 자존심이다." 자동차 기술개발과 품질개선을 줄곧 강조했던 정 회장은 양궁에 있어서도 동일한 주장을 펼쳤다. 당시로서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스포츠 과학화가 대표적인 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양궁협회에는 커다란 소포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심장박동수 측정기와 시력테스트기 등이 들어있었다. 이는 과학적인 훈련을 강조한 정 회장이 미국 출장 중 따로 구입해 보낸 선물이었다.
한국 선수들을 위한 양궁 연습용 활도 정 회장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정 회장은 현대정공을 통해 레이저를 활용한 조준기가 부착된 연습용 활을 만들게 했다.
아울러 선수들의 연습량과 성적 등을 수치, 전산화해 선수들의 장단점을 살필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선수 개개인의 최적 컨디션을 찾아내는 등 신체관리에도 과학의 개념을 도입했다.
이 같은 스포츠 과학화는 향후 '최강 대한민국 양궁'을 꺾고자 하는 다른 나라 대표팀들이 그대로 도입하면서 한국 양궁이 곧 세계표준이 되는 데 일조했다.
◆현장서 답 찾는다, 해외 나간 선수단 반찬·물 직접 챙겨 ◈
정 회장은 사업 차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시기에도 양궁대표팀의 큰 경기에는 반드시 모습을 내비친다. 세계 각지 현장을 찾아 바로 옆에서 부족한 점을 살펴야만 직성이 풀리는 정 회장의 현장경영 행보가 여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특히 정 회장은 대표 선수단이 입에 맞지 않는 타국 음식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백화점을 들러 선수들이 먹을 반찬을 직접 챙기는 세심한 면모를 보이곤 했다. 1991년 폴란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선수들이 물 때문에 고생하자, 스위스에서 비행기로 물을 공수한 일은 유명하다. 애틀랜타에서는 선수들이 초콜릿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박스째로 초콜릿을 선물했다.
또한 태릉 선수촌을 찾은 후에는 대표선수들의 숙소가 낡았다며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도배를 다시 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는 무엇이든 꼼꼼하게 살피는 정 회장의 세심한 배려에서 시작된 것이다. 선수단이 기죽는 것을 원치 않았던 정 회장의 애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 이은 양궁사랑, 정의선 부회장이 양궁협회장 이어받아
목표를 제시하고 그대로 밀어붙이는 정 회장의 뚝심경영은 30년 가까이 한결 같았던 그의 양궁사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L.A.올림픽 이후 정 회장의 목표는 단 하나. 대한민국 양궁이 올림픽 금메달 4개를 석권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에 오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대규모 지원도 아끼지 않았고, 학연, 지연 등 병폐를 경계했다. 세계 최강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모아 달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우리가 최고여야 한다는 그의 승부욕이 발휘된 응원 일화도 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이야기다. 귀빈석을 마다하고 땡볕아래서 한국 대표단 응원에 나섰던 정 회장은 경기가 끝난 후 다음날 경기에 앞서 징을 구해올 것을 지시했다. 상대편에 비해 수적으로 달렸던 응원단 규모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으면 소리로라도 제압해 최고의 응원을 펼치겠다는 것이 정 회장의 생각이었던 셈이다.
정 회장의 양궁사랑은 그룹 차원은 물론, 대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정 회장에 이어 1999년부터 회장직을 맡은 인물들은 모두 현대차그룹 계열사 대표들이다. 2005년부터는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다.
◆여수엑스포 유치, 7개월 간 11개국 12만km 글로벌 행보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정 회장의 뚝심은 양궁뿐 아니라 2012 여수 엑스포 유치행보에서도 엿보인다. 2007년은 특히 정 회장의 출장이 잦았던 시기다. 정 회장이 그해 4월부터 7개월 간 방문한 국가는 총 11개국, 비행거리는 12만6000여km에 달한다. 이는 지구 세바퀴를 넘는 거리다.
4월과 5월에는 체코, 슬로바키아, 터키, 브라질 등을 방문했고 10월에는 절반 이상 해외에 머물며 유럽, 북미, 중남미 등을 찾았다.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준공식, 체코 현대차 공장 기공식 등 얼핏 사업차 출장으로만 해석되지만 동시에 여수 엑스포를 위한 행보기도 했다.
특히 정 회장은 명예위원장으로서 각종 유치활동을 위해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다. 사업 차 출장을 떠날 때는 여수시, 청와대측과 일정을 맞춰 엑스포 유치와 관련된 만남을 가졌다. 또한 유치기간 내 현대기아차 그룹 대외행사에는 어김없이 여수 엑스포를 홍보하는 각종 배너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는 후문이다.
특별취재팀(이정일ㆍ채명석ㆍ최일권ㆍ김혜원ㆍ조슬기나 기자) MK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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