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⑦ 가상 MBTI테스트로 본 리더형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이른 아침 집무실에 출근하면 다른 활동 없이 일에만 매달린다. 틈틈이 임원들과 점심 '번개'를 갖고 가벼운 농담을 즐긴다. 호통을 칠 때는 불같다. 하지만 야단을 치고 난 후에는 반드시 따로 연락해 “섭섭했냐”며 다독인다. 이미 결정한 사안에 대해 끝까지 반대하는 임원은 인사를 통해 쳐냈다. 회의가 끝난 후에는 다시 각 부문의 임원들과 독대해 의견을 경청한다.
재계 대표 리더로 꼽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어떤 리더형일까. 전통적인 지도자형? 수완 좋은 활동가형? 임금 뒤의 권력형? 아이디어뱅크형?
IGM세계경영연구원과 본지가 공동으로 정몽구 회장의 의사결정 패턴을 통해 성격유형을 파악하는 가상MBTI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정 회장은 선지자, 예언자, 신비주의자형으로 불리는 INFJ(내향·직관·감정·실천)형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종교 관계자에 많은 타입으로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로는 흔치 않은 타입이다. 해외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테레사 수녀 등이 대표적인 INFJ 유형에 속한다.
◇I 내향= 정 회장은 대중에 나서는 것보다 1대 1이나 소규모 만남을 즐겨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넓은 인맥보다는 소수와 깊은 관계를 형성하려는 타입이다. 혼자 사색하며 고민하는 시간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이른 아침 집무실에 출근하면 일에만 매달리고 외부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정 회장은 화려한 말솜씨를 가진 '달변가'는 아니다. 오히려 대중에는 말솜씨가 어눌한 편으로 유명하다. 실제 그룹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도 논리 있는 연설을 전개하는 것보다는 묵직한 한 마디를 던지는 편이다.
내향형은 1대 1이나 소수와 만날 때 마음이 편하고, 여러 사람 앞에 나설 때 매우 불편해 한다. 정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언변에 서투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 같은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 회장과 독대한 다수 인사들은 평소 알려진 것과 대조적인 그의 부드러운 화법을 인상적인 면으로 꼽곤 한다.
◇N 직관= 정 회장은 호기심이 많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특히 신기술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의 현대자동차그룹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그는 임원회의 등의 자리에서 미래형 발언을 빼먹지 않는다. 품질경영, 디자인경영 등 화두를 던지고 10년 뒤를 언급한다. 모두가 공장 건설을 반대할 때 추진하고, 공장 증설을 제안하는 임원들에게 '이제는 품질로 간다'고 제안하는 식이다.
신기술에 대한 관심, 미래지향, 비범한 직관력 등 이는 모두 직관형의 대표적 특성으로 꼽히는 내용들이다. 임흥수 현대위아 대표는 “처음에는 임원들도 의아해하다가 어느 순간 무릎을 치며 '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한다. 노재만 베이징현대 사장 역시 “그룹 총수들만의 DNA가 있는 것 같다”며 “큰 그림을 보는 동물적 직관력이 뛰어난 분”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대화를 꺼낼 때는 주제가 순차적으로 전개되기보다 여러 아이디어들이 섞여 동시에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측근들의 언급이다. 이 또한 직관형의 대표적 특성이다.
◇F 감정= 정 회장은 불같은 성미로도 유명하다. 한번 화를 낼 때는 불같다는 평가다.
하지만 직접적인 질책보다 돌려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례로 임원들을 야단치고 난 후에는 반드시 식사자리, 전화 등을 통해 다독거리곤 한다. 단 둘이 있을 때는 “꾸짖어서 섭섭했어?”라며 등을 두들기기도 한다는 것이 현대차그룹 계열사 한 CEO의 전언이다.
올 초 정 회장은 4주 연속 주말마다 골프장을 방문했다. 평소 골프를 즐기지 않는, 그 답지 않은 행보였다. 측근들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정 회장의 방문은 골프장 내 부실공사로 인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었다. 관리자를 불러 따끔한 야단을 치기보다는 특별한 언급 없이 해결되도록 스스로 움직인 것이다.
손자들이 집에서 놀 때 가구의 모서리에 부딪칠까 봐 모서리마다 천을 직접 둘러준 일화 등은 전형적인 감정형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양웅철 부회장은 정 회장에 대해 “강하고 약한 부분을 짚어낼 줄 알고, 세심한 배려가 있다”며 “회의에서도 주제와 관련된 부문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편”이라고 전했다.
단 정 회장은 그룹 총수가 되기 위한 경영자 수업을 줄곧 받았던 탓에, 경영행보에서는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고형 특성도 나타난다는 평가다.
◇J 실천=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 회장의 닮은 점 중 하나는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밀고 나가는 뚝심과 추진력이다. 이른바 '불도저'로 불리는 이들 부자의 추진력은 실천형(판단형)의 주 특성이다. CEO가 툭 던진 한 마디가 바로 실행에 옮겨지는 현대의 분위기는 이를 잘 드러내준다.
실천형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일단 결정된 사항을 끝까지 추진한다. 계획에 따라 사고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한다는 점도 실천형의 특성이다. 규칙적인 생활도 대표적인 면으로 꼽힌다. 정 회장은 일흔이 넘은 지금도 새벽같이 양재동 집무실에 나와 업무를 본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면도 실천형에 가깝다. 재계 2위그룹의 오너총수인 정 회장은 정재계 귀빈을 초청한 자리에서는 기자들 근처로도 자리하지 않을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혹시나 기자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될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청운동 시절에는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새벽 늦게 퇴근해도 늘 맞이해 인사를 거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명예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정 회장은 늘 부친의 한 걸음 뒤에 서 있다.
◇INFJ 예언자, 선지자형= INFJ형을 가장 잘 묘사하는 단어는 성실성과 독창성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이 탁월한 경우가 많으며 인내심이 많고 도움 주기를 좋아한다. 또한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개념들을 한 단어로 축약해 핵심을 꿰뚫는 관념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INFJ형은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바칠 정도의 용기도 있다. 이들이 순교자형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INFJ형 리더는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리더가 되는 경우가 많다.
INFJ형은 진지하며 성실한 특성을 갖고 있어, 타인에게도 이 같은 특성을 요구하는 성향이 있다. 인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을 '거짓말하지 않아야 한다'로 설정해놓은 것도 정 회장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INFJ의 가장 큰 약점은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들은 큰 그림에 초점을 맞추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필수적인 세부사항을 놓치거나 자신의 생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 회장의 경우 현장경영을 통해 이러한 단점을 철저히 보완해온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말단 부품과장으로 시작해 현장에서 직원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성장해온 배경이 현실감각을 키워줬다는 해석이다.
또한 일단 자신의 '필(feel)'이 꽂히면 한 가지 목적에만 골몰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독할 정도로 결단력이 센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에 있어 매우 집요하고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권상술 IGM 세계경영연구원 박사는 “예언자, 선지자적 특성을 갖춘 정몽구 회장은 그룹 총수라는 위치와 독특한 인사 스타일이 더해져 강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며 “카리스마가 강한 경영자가 이끄는 회사는 리더 부재 시 혼란에 빠질 수 있어, 향후 정 회장의 중요한 과제는 2인자 승계체제와 이에 대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MBTI란?=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MBTI는 한 개인의 의사결정 패턴을 에너지 충전방식(외향형·내향형), 정보수집 방식(감각형·직관형), 의사결정 방식(사고형·감정형), 생활양식(판단형·인식형) 등 네 가지 축으로 살피는 대표적 성격파악 도구다. 카를 융이 정립한 심리유형(성격유형)을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즈 라는 모녀가 보완해 만들어냈다.
특별취재팀(이정일·채명석·최일권·김혜원·조슬기나 기자) MK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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