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육류가 주식인 서양인들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과도한 육류 탐식도 만만치는 않다. 한국인들이 고기를 '좀' 먹기 시작한 것은 어느 정도 먹고 살게 된 1980년대부터다. 외식이라고 해봐야 기껏 자장면이나 먹었을 뿐인 지긋지긋한 과거를 잊으려는 보상 심리 때문일지, 한국인들의 육류 소비는 이때부터 폭발적인 상승세를 시작했다. 호사다마다. 암ㆍ고혈압ㆍ당뇨병 등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한 생활 성인병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인간은 채식 위주의 생리 구조다. 전체 32개의 이 중 섬유질을 자르는 앞니가 8개이며 곡물을 으깨는데 사용되는 이가 20개인 반면, 육류를 찢는데 사용되는 송곳니가 고작 4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하는 증거다. 또한 유목민 출신으로 고기를 즐겨 먹어온 서양인들과는 달리 농경 문화에 기초한 한국인들은 초식 동물보다는 짧고 서양인들보다는 1~2배 정도 긴 창자를 가진, 전형적인 초식 민족이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위치한 '청미래'는 제철에 나는 채소들을 이용해 전통 한국 방식으로 요리한 음식을 제공하는 자연식 뷔페 레스토랑이다. '자연식'이라는 말에서 채식이나 값비싼 유기농 재료들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청미래'의 자연식은 한국에서 제철에 난 오염되지 않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한 조리법이나 과도하거나 거창한 꾸밈도 전혀 없다. '밥상이 약상이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대로 과거에 흔히 먹던 음식을 예전 조리 방식 그대로 낼 뿐이다.
'청미래'는 백미가 아닌, 식감과 영양, 소화력이 백미보다 월등한 현미에 기초한 식단을 제공한다. 백미로 만든 흰 쌀밥은 벼 껍질의 식이섬유와 비타민 등 95% 이상을 제거한 탄수화물 덩어리다. 삼시 세끼 흰 쌀밥을 주식으로 고집하면 탄수화물 과다로 이어져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게 된다. '청미래'의 주식이 현미라면 부식은 곡식과 채소 80%와 육류 20%다.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비타민 등 주식에 부족한 여러 영양 성분들을 부식에서 보충하는 식이다. '청미래'는 전채부터 밥ㆍ국ㆍ반찬 등은 물론 커피ㆍ식혜 등 일체 후식까지 약 60~70여 개의 유기농 요리들을 뷔페로 제공한다. 2003년 시작한 '구로점'에 이어 지난 7월 문을 연 '잠실점'은 경상북도 울진군과 결연을 맺어 고추ㆍ양파ㆍ감자ㆍ미나리 등 농산물과 농산물 가공품은 물론, 송이ㆍ대게ㆍ미역 등 계절 식자재도 절반 이상을 울진군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청미래'의 내부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한식 뷔페 레스토랑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친환경 유기농이 사람과 자연을 살린다' 라는 문구와 한 상 가득 차려진 70여 가지 음식들의 면면은 '청미래'가 여타 뷔페 식당과는 확실히 다름을 눈치 채게 만든다. 먼저 오색 현미 잡곡밥과 9분도 쌀눈밥, 산나물 약밥 등 세 가지 종류의 밥이 시선을 잡아끈다. 셋 모두 부드러운 흰 쌀밥에 익숙해진 입에는 다소 겉도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백미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 속에 오래 남아 포만감과 만족감을 두루 안겼다. 깻잎 쌈밥과 해초 자반 주먹밥 등 채소와 해초를 골고루 사용한 밥 요리는 근사한 단품이었으며, 콩 단백 닭 강정과 갈빗살 등 식물성 단백질 덩어리인 콩으로 만든 '가짜' 고기 요리도 '진짜' 육류 못잖은 맛이었다.
또한 곤약 특유의 떫은 맛이 완전히 실종된 상큼한 곤약회 무침이나 도토리묵, 해초묵 등 모두 우리 재료를 써서 손으로 만든 '묵' 코너는 입 속에 청량감을 돌게 했으며, 울진 특산물인 대게의 살과 내장이 든 미니 대게살 비빔 초밥은 도시 한복판에서 느끼는 청정 동해였다. 삼삼한 간의 동태 찜이나 석쇠로 구워내 기름기가 쏙 빠진 조기구이, 매운 맛을 즐기는 현대인들을 위한 오징어 채소 불고기 등 아직은 자연식이 어색한 현대인들을 위한 동물성 단백질 요리들의 배치도 영리한 선택이었다.
마지막으로 '청미래'의 후식 코너는 자연식 콘셉트를 극대화한 아기자기한 구성이 돋보였다. 뽕나무차, 감잎차, 현미식혜 등 기존 한국 음료 외에 유기농 커피와 설탕까지 구비했으며, 잘게 썰어놓은 생식용 야생 다시마는 자연식을 마무리하는 훌륭한 후식이었다. 또한 현미와 발아현미를 1:1의 비율로 만들어져 현미 조청과 함께 먹는 현미가래떡은 최상의 후식으로, '자연식은 맛이 없다' 는 선입견을 말끔히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냈다. 어색하고 낯설었던 자연식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으로 다시 변하는 순간이었다. '청미래'는 인간이 본시 초식동물이었던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우리집은// '청미래' 민형기 대표
1980년대 초반,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입시학원을 운영하던 '청미래'의 민형기(64) 대표는 우연히 찾은 병원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과다한 업무로 끼니를 거르거나 인스턴트 음식에 의존해 온 민 대표가 간경화와 갑상선, 임파선암 판정을 받은 것. 당장 항암치료와 적확한 식이요법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10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얘기도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이후 몸과 건강에 관련된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접하며 사람의 몸이 먹거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를 새삼 깨달은 민 대표는 지난 2003년 아예 유기농 뷔페와 매장을 겸한 '청미래 유기농식당'을 열었다.
목동과 잠실 두 곳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민 대표는 농장에서 직접 채소들을 재배하고 야생 산과 들을 오가며 무공해 채소들을 채집한다. 또한 그는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많은 생산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 유기농 자연식 먹거리를 전파하는 데 앞장선다. 그런데,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에서 자연식 운동가로 방향을 튼 민 대표의 몸 속 암세포는 어떻게 됐을까? "그 이후로 병원에 간 적이 없어 아직 암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된 거 아닌가요?" 건강식 전도사 민 대표의 확신에 가득 찬 말이다.
자문위원은//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은미: 곤약과 노란팽이버섯
곤약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칼로리가 전혀 없어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꼽히지만,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필수 영양소도 부재하므로 마구잡이로 곤약만 섭취하면 영양실조에 걸리기 십상이다. 베트남 원산의 구약나물의 땅 속 줄기를 가루를 내 석회유와 함께 끓여 굳힌 곤약은 우뭇가사리로 만든 '우무'와 외형은 유사하지만 맛이 조금 더 떫다. 물에 살짝 데치거나 소금으로 문질러 씻은 후 조리하면 떫은 맛이 많이 가시는 효과가 있다. 곤약 속 글루코만난(glucomannan)은 장 운동을 활발하게 해 변비에 특효가 있으며, 혈당 증가의 속도를 줄여주므로 당뇨병과 비만 예방에도 좋다.
대개 '황금팽이버섯'으로 불리는 노란팽이버섯은 단백질과 칼슘, 필수 아미노산이 대량 함유돼 성장기 청소년들의 두뇌 개발과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 좋은 식자재다. 노란팽이버섯은 여느 팽이버섯에 비해 향이 진하고 칼로리는 낮지만 섬유소와 수분이 풍부해 포만감을 준다. 주로 물에 데쳐 먹지만 식감이 좋아 생식도 가능한 노란팽이버섯은 은은한 황금색을 띠고 있어 요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청미래'의 '황금팽이 우엉잡채'는 팽이버섯의 단백질, 칼슘과 수분, 우엉의 식이섬유소와 당질의 밸런스가 훌륭하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사진_이준구(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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