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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창던지기 박재명 "유종의 미, 런던에서 거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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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박재명(30, 대구시청)은 한국 창던지기의 얼굴이다. 10년 이상 최고 자리를 고수했다. 가슴에 처음 태극마크를 새긴 건 1999년. 어느덧 최고 선수에게만 허락되는 태릉선수촌은 안방처럼 편안하게 느낀다.


그가 가장 빛난 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이다. 한국 육상 선수로는 유일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재명은 한국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4년 3월 뉴질랜드 국제육상선수권대회에서 83.99m를 던졌다. 기록은 7년여 간 깨지지 않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2004년 뒤로 끊긴 상승세. 그리고 새로운 창던지기 스타의 부재다.

침체된 흐름에는 3년여 전부터 변화가 생겼다. 후배 정상진(용인시청)의 기량 상승으로 라이벌 구도가 마련됐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경쟁은 더 뜨거워졌다. 먼저 앞서나간 건 박재명. 7월초 일본 고베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80m19를 기록, B기준을 넘어섰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기준기록을 A와 B로 분류한다. A기준 통과 시 주어지는 국가당 출전권은 세 장. B기준(79m50)에 머물 경우 티켓은 한 장으로 줄어든다. 매번 선배의 그늘에 가렸던 정상진은 7월말 가까스로 전세를 뒤집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중고교대회 번외경기에서 80.38m를 던지며 박재명을 제쳤다.

A기준(82m) 통과나 정상진의 기록을 앞질러야 하는 기로에서 박재명은 한 번 더 창을 어깨 위로 짊어졌다. 7월 29일 태백에서 열린 중·고육상경기선수권대회 번외경기에서 창공을 향해 힘껏 창을 내던졌다. 그러나 창이 꽂힌 거리는 79.53m. B기준을 겨우 넘는데 그치며 한 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했다.



날아가 버린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 사실 박재명에게 기회는 한 번 더 있었다. 지난 14일 충북 보은에서 열린 추계 중고육상경기대회 번외경기다. 그는 과감하게 도전을 포기했다. 그 이유에 대해 박재명은 이렇게 말한다.


“(정)상진이의 실력에 미치지 못한다. 패배를 인정한다. 후배의 선전을 기원한다.”


때 묻은 창을 영영 내려놓는 건 아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새 목표를 세웠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다. 박재명을 만나 불발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권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 품은 희망을 들어봤다. 또 한국 창던지기의 오늘과 내일도 함께 짚어봤다.


다음은 박재명과 일문일답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이 불발됐는데.


박재명(이하 박) 솔직히 많이 아쉽다. 지난해부터 대회를 준비했다. 그간 해온 대로 열심히 운동에 매진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해 안타깝다.


스투 선발전이 여느 때보다 박빙으로 전개됐다.


이전까지 국내 경기를 뛰며 긴장해 본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후배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매 경기에 임했다. (정)상진이의 실력이 많이 올라왔다. 좋은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스투 이번 대회를 열심히 준비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한국나이로 이제 31살이다.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주위에서 ‘노장’이라는 말을 자주 꺼낸다. 그게 싫다.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스투 그간 에사 우트리아이넨, 카리 이하라이넨 등 핀란드 출신 코치들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모두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을 줬다. 우트리아이넨은 핀란드의 육상 영웅이다. 가르침 덕에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하라이넨은 우트리아이넨의 친구다.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유러피언선수권대회 등에서 핀란드대표팀에 13개의 메달을 안겼을 정로도 탁월한 지도력을 자랑한다.



스투 이하라이넨 코치의 훈련 색깔이 궁금하다.


기술적인 측면을 많이 강조하는데 주로 큰 동작을 손본다. 섬세한 기술에 신경을 쏟는 우트리아이넨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느 지점에서 어떤 동작이 어떻게 나와야하는지를 큰 그림을 그려 설명한다. 이전의 우트리아이넨의 가르침이 여성스러웠다면 남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가르치는 방식에 큰 차이는 없다. 둘 모두 창을 던지는 동작을 개인 카메라에 담은 뒤 느린 화면을 통해 문제점을 설명한다. 선수들의 의견도 잘 받아들여주는 편이다. 원래 핀란드, 체코 출신 지도자들의 창던지기 교육이 수준 높기로 유명하다.


스투 외국인 코치들의 지도로 실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그간 국내 코치들은 내가 따로 고안한 기술의 사용을 무작정 만류했다. 우트리아이넨, 이하라이넨 등 외국인 코치들은 달랐다. ‘네 생각이 맞다’며 그 응용을 적극 검토해줬다. 선수 대부분이 외국인 코치들의 특별한 기술을 배워 국내 창던지기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고 본다.


스투 아직 세계대회에서 국내 선수들의 성적이 미흡하다. 그 발전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 코치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완만한 산을 만들었다. 외국인 지도자의 영향을 받은 선수들이 유소년들에게 그 기술을 전파한다면 분명 다음 세대에서 누군가 큰일을 저지를 것이다. 물론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스투 그게 무엇인가.


그간 외국인 코치 모셔오기 등의 지원을 받은 건 대한육상연맹이 창던지기를 전력 종목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그 뒷받침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창던지기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스투 일부 육상 관계자들은 외국인 코치의 지도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 이유로 서구 선수들과의 다른 체격이 자주 거론되는데.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트리아이넨과 이하라이넨은 정형화된 방법을 가르친 적이 없다. 개개인의 신체 특성에 맞는 다양한 무기를 제시한다. 물론 그들의 교육에도 모두에게 적용하는 기본 틀은 있다. 창던지기에 필요한 밑바탕 다지기다. 차별화는 그 다음 이뤄진다. 개개인의 특성에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맞춤 형식으로 적용시킨다.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정상급 기량을 갖춘 북유럽선수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더 이상 그들은 특유 힘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다양한 기술 습득을 통해 세계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스투 태릉선수촌에 입성한지 13년째를 맞았다.


그간 태릉선수촌에서 지내며 많은 후배들을 떠나보냈다. 사실 그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자주 발탁돼 성장을 막은 것 같다.


스투 잦은 발탁 탓에 가족들을 자주 보지 못할 텐데.


올해 초 아들 지환이를 얻었다. 아내가 혼자 두 자녀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 애 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좋은 점도 있다.


스투 그게 무엇인가.


아내를 자주 보지 못하다보니 만날 때마다 애틋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연애 때보다 더 많이 설레고 그리워하고 있다.


스투 아내도 체육인인가.


아니다. 전공이 무용이다. 최근 육아로 바뀌었지만(웃음). 한국체대 석사과정을 밟으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다. 첫 딸 지우의 탄생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가장 그러하다. 2008년 6월 5일 대구에서 경기 도중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3차시기를 대충 마치고 부리나케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분만실에 들어간 뒤였다. 수성 톨게이트를 막 지나는데 출산 소식이 들렸다. 병원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4시간 뒤였다. 당시 장인어른의 헛기침을 잊을 수가 없다(웃음).



스투 아내에게 가장 고마웠던 기억을 꼽는다면.


저조한 성적으로 괴로워할 때 늘 함께 해줬다. 아내가 1살 연상이다. ‘여기서 끝내면 되겠느냐’는 따가운 질책이 마음을 다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스투 그게 언제였나.


2005년이다. 출전하는 경기마다 부진을 거듭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망친 후유증이었다. 계속된 침체는 술을 불렀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부진은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 그 해 마지막 대회였던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불과 2주를 준비하고 나간 대회였다. 뜻밖의 성적에 얼마나 자신감을 얻었는지 모른다.


스투 다시 2004년 아테네올림픽으로 되돌아가보자. 당시 느낀 세계의 벽은 어떠했나.


국내에서 쌓은 자부심이 단번에 무너졌을 만큼 높았다. 그간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나만큼 던지는 선수가 국내 창던지기 인구만큼 있었다. (잠시 말을 멈춘 뒤) 누구나 큰 대회에 처음 서면 이 같은 좌절을 맛볼 것이다.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스투 그게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다.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뛴다는 긍정적인 생각은 슬럼프를 멀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 경기를 계속 치르다보면 쌓이는 경험 속에 어느덧 노하우가 생길 것이다.


스투 국제대회에서 유독 4위에 이름을 자주 올렸는데.


한때 ‘4’라는 숫자를 저주처럼 여겼다. 200년 유니버시아드대회,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등에서 모두 4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 뒤 생각은 바뀌었다. 당시 지금의 박태환만큼 기대를 받고 나섰지만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때 알게 됐다. ‘4’는 행운의 숫자라는 것을(웃음).


스투 창던지기 강국인 핀란드, 노르웨이 등과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타고난 힘부터 다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환경이다. 핀란드 내 창던지기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우승자 테로 피트카마키는 2005년과 2006년 자국 언론의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꼽는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지훈련을 위해 핀란드를 찾은 적이 있는데 인근 시민들이 모두 경기장에 운집할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스투 광경을 보며 많이 부러웠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블링 카니발이다. 창던지기 축제인데 유럽 최고의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노하우를 교류하고 화합을 다진다. 당시 들었던 세계기록 보유자 얀 젤레즈니(45체코)의 말이 생각난다. 노하우를 묻는 몇몇 선수들의 질문에 “스피드, 지구력, 리듬감을 모두 키워라”라고 답했다. 세계기록을 꽤 오래 지키고 싶은 듯 보였다(웃음).


스투 창을 처음 잡은 건 언제인가.


평창 대화중학교 3학년 때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을 배웠는데 이전에 소화한 멀리뛰기, 달리기 등을 전문적으로 알려줄 코치가 없었다. 산속에 위치한 시골학교였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창을 쥐게 된 건 친구 김한기의 권유 덕이다. 그의 소개로 육상부에 들어갔는데 마침 원반던지기 국가대표를 지낸 김춘희 선생님이 기간제로 학교에 머물게 됐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열심히 훈련해 그해 강원도 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덕에 강원체고에 진학할 수 있었고 전문적으로 창던지기 기술을 갈고 닦기 시작했다.


스투 창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하늘을 찌르는 창의 모습에서 후련함을 느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어렵더라.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창이 좋다. 뭔가 끝이 없는 것 같은 느낌. 그게 내가 지금 창을 던지는 이유다.


스투 앞으로도 창을 놓지 않을 것 같다.


창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 고마움에 꼭 보답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차근차근 준비하겠다. 고마움은 그 뒤에 전달해도 늦지 않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사진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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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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