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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110여년 전 '교육 조서'를 살펴보며


대한체육회는 우리나라 아마추어 스포츠의 총본산이다. 1980년대 이후 올림픽도 프로에 문호를 열어 요즘은 각종 국제종합경기대회에 나가는 한국 선수단에 프로 선수들도 들어 있어 대한체육회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아우르는 국내 최고 스포츠 단체로 자리 잡고 있다. 또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통합돼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기능도 한다.


스포츠 팬들은 대한체육회라고 하면 '대한체육회=태릉선수촌'의 등식을 떠올린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대한체육회의 활동 가운데 스포츠 팬들의 눈에 가장 띄는 게 우수 선수를 찾아내 국가대표 선수로 키우고 이들을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 내보내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엘리트 스포츠 육성 외에 하는 일이 꽤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학교 체육 활성화다. 정부 관련 부처의 정책적인 지원이 있기도 하지만 대한체육회는 오래 전부터 학교 체육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20년 7월 창립한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 전신)는 일제 강점기 체육 활동의 중심이었다. 조선체육회는 특별히 학교 체육의 진흥에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오늘날 체육 명문교들은 거의 대부분 일제 강점기부터 각종 체육부를 육성했고 학생들의 체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그 무렵 조선체육회의 구성을 보면 학교 체육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조선체육회에는 평의원회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이 조직에는 학교장, 체육 교사 등 학교 관계자와 체육회 창립에 참여한 체육인 등 20명이 들어 있었다. 또 조선체육회 발기인 가운데에는 전문학교와 고등보통학교 교장 또는 교원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대한체육회가 조선체육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가운데 1950년대에는 체육 교사를 중심으로 대한학교체육회가 설립돼 전국 규모의 학도체육대회를 여는 등 독자적으로 체육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다 1961년 대한체육회 정관이 개정되면서 산하에 학도체육회를 설치해 대한학교체육회를 관장하도록 했고 이후 학교 체육은 대한체육회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됐다. 1975년 12월 26일부터 1976년 2월 16일까지 서울 시내 국민학교(초등학교) 체육 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240시간에 걸친 강습회를 연 게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학교 체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대한체육회는 해마다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체육 연수를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1년도 전국초등교원체육연수'는 지난 4일과 5일 태릉선추촌에서 열렸다.


체육 비전공자인 교원을 대상으로 체육 과목 지도력 향상을 통해 체육 수업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재미있고 다양한 체육 활동 기회를 제공해 학교 체육 활성화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마련된 이번 연수에는 서울과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100명의 교사가 참가했다. 연수 참여 교사들이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연수를 받았으며 "이번 연수가 매우 유익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몸을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 체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육의 3요소인 지육과 덕육 그리고 체육을 줄여 흔히 지덕체라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체덕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격은 좋아지고 있지만 체력은 약해지고 있는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에 대한 걱정이 이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나약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는 이들의 어깨에 나라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일찍이 체육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근대적 의미의 체육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19세기 말은 일본과 청, 러시아가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각축하고 있을 때다. 이때 선각자들은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만드는 체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의 보급에 앞장섰다.


특히 고종은 1895년 쇠퇴하고 있는 나라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 국민에게 내린 글을 통해 지육과 덕육에 치우쳤던 편향된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체육에도 힘쓰도록 당부했다. 각급 학교는 고종이 내린 '교육 조서'에 따라 체조 수업을 교과 과정에 넣고 운동회를 열기 시작했다. 여기서 체조 수업은 오늘날의 체육 수업이다.


1895년은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이고 유럽의 스웨덴과 덴마크, 독일 등에서는 나라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젊은이들의 몸과 마음을 튼튼히 키워 국력 회복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국가주의 체육에 힘을 기울여 다른 나라들의 주목을 끌고 있었다. 우리나라 체육의 시발점이 된 고종의 '교육 조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몸을 튼튼히 길러야 한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떳떳한 몸 움직임으로 맡은 바 일에 힘쓰라. 괴롭고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키우라. 근육을 키우며 뼈를 튼튼히 만들라. 병에 시달리지 않는 건강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라. 너희들 신민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너희의 덕과 몸과 지를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


그때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 아니어서 뒷부분은 현실감이 없지만 앞부분은 요즘의 상황과 하나도 다르지 않고 딱 들어맞는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더더욱 실감 나는 요즘이기에 110여년 전 '교육 조서'를 다시 살펴봤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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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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