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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라이딩 열풍]“한강변 숨은 비경이 내품에 다가왔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분 48초

자전거 라이딩 마니아 동행 취재기

[대한민국 라이딩 열풍]“한강변 숨은 비경이 내품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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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달려야 자전거다. 자전거를 말하기 위해 직접 자전거로 달려보기로 했다. 기자가 라이딩을 체험하며 자전거 라이딩의 매력과 요령, 장거리 라이딩의 특징 등을 알아보았다. 기자는 지난 7월 23일 라이딩 전문가와 함께 한강남단 당산 노들길부터 시작해 행주대교를 건너 일산 호수공원까지 약 25km 구간을 달렸다.

오전 7시 50분. ‘아, 할 수 있을까?’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 한 번도 달려본 적 없는 긴 자전거 길을 체험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부담감을 느꼈다. 밤새 뒤척였던지라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자전거를 끌고 집밖을 나서는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제발 중간에 쓰러지지는 말자.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될 순 없어.”


오전 8시 집 근처 역 엘리베이터를 타고 개찰구 앞으로 다가가자 역무원 아저씨가 손사래를 친다. “아가씨, 오늘은 안 돼, 이거 봐(벽에 붙은 안내문을 가리키며) 자전거는 공휴일과 일요일만 돼요. 더군다나 지금은 출근시간대잖아.

요즘 자전거 때문에 얼마나 사고가 많은 줄 알아?” 아저씨에게 통사정을 했다. 회사일로 부득이하게 자전거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멀리 가지 않을 거라고 조심해서 타겠다고. 한참 실랑이 끝에 안전수칙을 몇 차례나 당부받고 이동할 수 있었다.


토요일이긴 했지만 출근시간대라 승강장은 붐볐고 전동차가 들어온다는 소리에 사람들이 전동차 출입구를 향해 달려가는 바람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주의해야 했다. 조심조심 자전거를 전철에 싣고 2호선 당산역에 도착했다.


출구에서 계단으로 내려갈 땐 계단 옆 경사로를 이용해 내려갔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역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당산 노들길 출발, 일산 호수공원까지 25km


약속장소인 당산역 노들길, 일명 토끼굴 앞에서 이날 라이딩을 지도해줄 박상화(48) 리버맨(Riverman)오디오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이날 아들 박경환(12)군과 함께 나왔다.


오전 8시 50분.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박 대표에게 자전거 상태를 점검받았다. 박 대표는 안장이 너무 낮지 않느냐고 묻더니 가방 속에서 작은 드라이버를 꺼내 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안장 높이를 높였다.


자전거가 다리 길이보다 조금 높은 듯했지만 페달을 밟을 때 다리가 완전히 펴져 무릎에 가해지는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다.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서는 몸에 맞는 걸 타야 해요. 안장이 너무 낮으면 무릎이 아프고, 너무 높으면 팔을 너무 뻗게 돼 어깨가 아프게 되죠.”


출발 직전, 박 대표가 몇 가지 수신호를 알려줬다. 손바닥을 펴고 위 아래로 빠르게 흔들면 위험, 손바닥을 아래로 향해 위아래 방향으로 반복하면 천천히, 주먹을 쥐면 멈춤, 가위표시로 오른쪽을 가리키면 우회전을 하라는 수신호였다.


박 대표와 그의 아들 경환군 사이에 섰다. 경환군은 후방에서 기자가 지치지 않도록 도와줬다. 팀라이딩을 할 땐 무엇보다 팀원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9시 정각 드디어 출발, 박 대표가 먼저 페달을 밟으며 라이딩을 시작했다. 앞 자전거와 약 1m 정도, 앞차와 줄을 잘 맞춰야 찻길에서 덜 위험하단다.


“오늘 자전거 타기 진짜 좋은 날씨네요.” 박 대표의 말대로 날씨는 라이딩 하기 제격이었다. 기온은 약 25도. 하늘엔 구름이 끼어 직사광선도 내리쬐지 않았다.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자 시원한 강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자전거는 양화대교와 선유도를 지나 성산대교를 향해 씽씽 달렸다. 아직 곳곳에 한강 공원화 작업이 이뤄지고 진행되느라 공사 중인 구간도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기엔 불편하지 않았다. 빨간 아치형의 성산대교가 잿빛 하늘과 어울려 이국적인 느낌을 줬다.


수채화 같은 주변 풍경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달린지 15분쯤 흘러 자전거는 안양천과 한강이 합쳐지는 합수부 지점에 이르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중 한 곳이라서 들렀다. 달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목이 몹시 말랐다. 수돗가로 달려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라이딩 시 물은 매우 중요한 준비물 중 하나다. 보통 5분에 한 모금씩은 마셔줘야 한다. 목이 마르다는 느낌이 들면 이미 늦다는 얘기다. 갈증을 느끼기 전에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줘야 탈진하지 않고 자전거를 탈수 있다. 다시 달렸다. 10여분쯤 달려 가양대교를 지나고 방화대교 앞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지나가는 자전거인들을 만나 짧게 인터뷰 하면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막간을 이용해 박 대표로부터 장거리 라이딩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청해 들었다.


보통 장거리 라이딩이라고 하면 약 100km 이상 거리를 달리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자전거 속도는 시간당 20~25km, 건장한 성인 남성의 경우 최고 30~35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성인남성이 꾸준히 6개월에서 1년간 자전거를 연습하면 100km를 여행하는 건 금방 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한민국 라이딩 열풍]“한강변 숨은 비경이 내품에 다가왔다”


100km 이상 장거리 라이딩, 필수 관문 ‘속초’


많은 사람들이 장거리 라이딩에 빠져드는 이유는 자연을 벗 삼아 멀리까지 여행이 가능하고 덩달아 몸도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처음엔 동네 한 바퀴로 가볍게 시작했던 사람들이 다음엔 동네 지천을 오가다가 한강으로 진입, 한강 코스와 지천들을 하나둘 섭렵하고 이후엔 교외로 나가기 시작한다.


장거리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코스로는 단계별로 나뉘는 데 웬만큼 실력이 쌓이면 지천을 벗어나 한강 길을 따라 동쪽 팔당댐 부근이나 서쪽 일산 호수공원, 관악산 둘레를 도는 하트코스, 행주산성 등을 찾는다고 한다.


이후 한강 주변을 벗어나 의왕 백운호수, 시흥 물왕리, 관곡지 등 좀 더 먼 거리를 다녀오게 되고 좀 더 많은 라이딩 경험이 쌓이면 남산이나 북악스카이웨이, 남한산성 등 업힐(Up Hill) 지역으로 진출한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100km이상 장거리 라이딩에 도전하게 되는데 자전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목적지 중 하나는 7번 국도길이라 불리는 강원도 속초다. 이 코스는 중간 미시령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강한 인내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구간이다.


한 중년 여성이 이 코스를 자전거로 왕복하고 나서 말 안 듣던 자녀들이 엄마 말이면 꼼짝도 못하게 됐다는 실화가 전해질 정도. 요즘은 중앙선 지하철이 다니면서 속초 코스는 용문역까지 지하철로 이동 한 뒤 출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헝그리 녹다운(hungry knockdown)이라는 말을 알아요? 라이딩 할 때 배고프면 기절한다는 얘기야. 자전거 타기 전엔 밥을 꼭 먹고 타야지 안 그러면 힘들어서 못 타요.


아침 안 먹었으면 초코바라도 하나 먹고 와요. 빈속으로 타면 정말 쓰러져.”
박 대표가 화제를 바꿨다. 그랬다. 아침을 안 먹었다. 쫄쫄 굶은 채 30여분을 달렸더니 허기와 함께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박 대표는 자전거를 안전하게 잘 타기 위해선 우선 잘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랴부랴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초코바를 구입해 껍질을 까고 한 입에 베어 물었다. 기분이겠지만 단 맛이 입안에서 사르르 퍼지면서 몸 안에 에너지가 확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에너지를 한껏 충전한 뒤 또 다시 출발했다.


맹꽁이가 나온다는 강서습지센터를 지나 행주대교로 향했다. 길가에 핀 주황색 능소화가 하늘하늘 춤을 추며 가는 길을 배웅했다. 파가 제철인지 한강 서쪽 끝 밭 주변에선 파뿌리에 묻은 흙냄새가 진동을 했다.


파밭을 지나자 100여 미터 전방에 행주대교가 나타났다. 다리 아래에서 진행 방향 왼쪽으로 방향을 트니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행주대교 위로 진입하는 램프길이었다. 박 대표와 경환군은 단박에 기어를 변속하더니 눈 깜짝 할 새 오르막을 한달음에 올라갔다. 기자도 심호흡을 하고 기어를 변속했다.


기아를 1단에 놓고 페달을 가볍게 한 뒤 이내 달렸다. “으라차차! 으악!” 자저거가 올라가나 싶더니 이내 뒤로 밀려난다. 왠지 모를 무서움에 후다닥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왔다. 겁도 나고 힘도 딸렸다.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숨이 가빴다. 낑낑대고 겨우 다리 위로 올라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끝났나 싶었는데 이젠 다리 건너기다. 1.46km나 되는 행주대교. “잠깐 멈췄다갈까?” “아니야 다리는 건너고 보자.” 다리를 건너는 내내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했다.


다리를 건너 좌측 길로 내려오자 철책선이 길게 펼쳐진 흙길이 나왔다. 날카로운 철책 너머로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한적한 교외 풍경에 한 눈을 파고 있는 사이 울퉁불퉁, 흙과 자갈이 섞인 요철 때문에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았다.


몇 번인가 ‘악악’ 소리가 난 뒤 시멘트가 얌전하게 깔린 농로를 만났다. 비로소 시골길에 접어들었다. 자유로를 따라 난 길옆을 달리니 푸르게 익어가는 논 위로 잠자리 떼가 준동하고 길가의 호박꽃과 나팔꽃이 한들한들 바람 따라 움직였다.


‘꼬끼오’ 알을 난 닭들이 목청을 돋우는 냄새 심한 계사도 지나고 꿈벅꿈벅 순하디 순한 눈망울을 가진 한우 축사도 지나쳤다. 비닐하우스 안에선 상추, 토마토 같은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달리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구불구불 농로를 지나고 나니 다시 2차선 도로가 나왔다. 일산 호수공원으로 가는 뒷길이다. 화물차와 자동차가 뒤섞여 달리는 도로인데다 갓길 주차 지역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박 대표를 곧잘 따라갔지만 몇 번이나 사거리에서 사고가 날 뻔 했다.


삼거리 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의 기세에 눌려 머뭇거리는 사이 길을 건너지 못하다가 우회전 하는 차에 부딪힐 뻔했던 것이다. 진땀이 났다. “이런 길에서는 자동차 운전할 때처럼 좀 과감하게 치고 나갈 필요도 있어요. 안 그러다가 우물쭈물 하면 오히려 큰 사고 나요.”


박 대표는 큰 도로에서 각별히 주의를 당부했다. 또 한 차례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다시 한길로 들어섰다. 호수공원 중간부근으로 진입하는 길이다. 200여 미터를 달렸다. 일산 호수공원으로 진입, 공원 내 자전거 길을 따라 반 바퀴쯤 돌아 음악분수광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올라 제법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중간에 쉼터에서 쉬고 점심식사도 하고 느긋하게 오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지만 실제 자전거로만 이동한 시간은 두 시간 남짓. 거의 10km/h(자전거 평균 속도는 20km/h)의 속도로 달린 셈이다. 박 대표는 초보 치곤 잘 따라왔다고 칭찬했다.



라이딩 동행 ‘박상화·박경환 부자’의 자전거 예찬


“자전거 즐겁게 타세요, 사도(邪道)로 빠지면 안됩니다.”


박상화 대표는 자전거 동호회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회원으로 현재 용산에서 하이파이오디오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몇 해 전 건강 때문에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해 장거리 라이딩은 물론 산악자전거까지 다양한 라이딩을 시도하고 있다.


아들 경환군도 1년 전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아버지를 따라 속초를 비롯해 관악산 등에서 모험을 즐기는 초등학생 라이더다.


이날 박 대표 부자와 라이딩을 하게 된 계기는 이번 자전거 기획에 대한 취재 때문에 한참 막막해하던 기자가 우연히 찾아들어갔던 당산역 앞 자전거 수리전문센터 ‘산즐러’의 대표가 적절한 전문가를 수소문해준 덕분이었다.


박 대표는 동호회에서 다양한 장거리 팀라이딩을 진행하며 초보들과도 많이 라이딩을 했기 때문에 이번 라이딩 체험 가이드로서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게 산즐러 대표의 추천 이유였다.


박 대표는 바람직한 라이딩은 “즐겁게 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심을 잃지 않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본연의 자전거 타기에서 벗어나 다른 길, 사도(邪道)로 빠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는 그는 자전거 타기보다 자전거 자체에 집착해 비싼 자전거만 선호하며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음주 라이딩을 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 대해 배려 없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을 꼴불견으로 꼽았다.


“자전거 타기보다 자전거 자체만 신경 쓰는 사람들 중 안 된 사람 많아요. 비싼 자전거를 사는 것까진 좋은데 동호회 등에서 라이딩 하다가 동료가 자전거에 흠을 냈다고 평소엔 점잖은 사람이 돌변해서 멱살 잡고 싸우는 사람,


누가 자전거를 훔쳐 갈까봐 동료들 하고 말도 안 섞고 밥도 따로 먹으면서 시선은 자기 자전거에만 두고 있는 사람, 자전거 복장 다 갖추고 이상한 완장정신에 취해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타인에게 호루라기 불고 비키라고 위협하는 사람,


동호회 나와서 자전거 좀 타다가 이내 술잔치 여는 사람 등등 그건 자전거 본연의 즐거움을 벗어난 행동이죠. 자전거를 즐겁게 타기 위해선 늘 내가 왜 이걸 타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전거는 달리는 즐거움 때문에 타는 거지 다른 걸 위해 타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막 자전거에 빠져들기 시작한 사람들, 혹은 위의 사례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라면 박 대표의 말을 한번쯤 가슴에 새겨볼 것을 권한다.


지하철은 ‘빨간 날’만 이용하세요


자전거를 가지고 지하철에 탑승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공휴일과 일요일만 가능하다. 평일에도 암묵적으론 허용되긴 하지만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나 가능한 일.


혼잡시에는 안전문제로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자전거 탑승이 허용되는 지하철은 서울지하철 1~8호선, 분당선, 경의선, 인천지하철 1호선 등이다. 단 서울의 9호선은 량수 부족으로 일반 자전거 반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접이식 자전거는 가능하다.
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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