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들께선 '똥상'을 싫어하십니다.
어떤 고객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찡그린 얼굴을 의미하더군요. 누구나가 다 싫어하겠죠. 첫 만남부터 똥상을 한 캐디를 보면 라운드 전날 밤의 설레는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듣기 거북한 말이지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했는데 똥상을 하고 있으면 별로 좋지가 않거든요. 하지만 저희 캐디들은 직업인이기 때문에 고객님들께서 마음 다치는 소리를 하시거나 동반자가 아닌 심부름꾼 정도로 대하셔도 똥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겉으로는 웃는 척을 하는 거지요. 고객들은 그러나 참 귀신같이 이런 억지웃음을 금새 파악하십니다.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어떻게 아시고는 "뭐 안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보십니다. 제가 몇 번 경험해보니 똥상은 얼굴 표정보다는 눈빛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눈을 마주치게 되면 눈망울 속에 고단함이 보이는 게지요. 두 눈을 가지고 있는 한 마음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속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하면 모든 일들이 다 엉망진창이 되는 게 당연한 일인가 봅니다. 고객님들과의 라운드가 즐겁기보다 개인적인 감정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으면 기분에 따라 눈빛이 달라지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내 기분이 나쁘다면 절대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도 눈이 맑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려면 마음부터 비워야겠죠. 매일 아침 출근길 끝없는 서해바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마음 속 온갖 불순물들을 버려버리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투명한 눈빛으로 인사하는 맑은 캐디가 되고 싶은 바람입니다.
손은정 기자 ej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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