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에 눈을 마주치자마자 저에게 "뭐 줄 거 없냐?"고 물어보시는 고객님이 계셨습니다.
저희 골프장에서는 평소에도 다채로운 이벤트를 통해 볼 마커와 롱티 등 많은 선물들을 고객님들께 드리고 있지요. 한 고객님이 그날따라 뭔가 더 가져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셨나봐요. 라운드 내내 "뭐 줄 거 있으면 달라"고 하시는데 제가 드릴 거라곤 푸짐한 마음밖에 없으니 이 일을 어쩝니까?
"코스에 있는 뱀이라도 잡아가시죠." 농담을 건네 봐도 두리번두리번 카트 구석구석을 뒤지시며 로스트볼까지도 모조리 고객님 가방 속으로 집어넣으시더라고요. 심지어 카트에 비치되어 있는 롱티와 숏티는 물론 안경 닦는 타월까지 다 챙기셨습니다.
이런 고객님이 얄미워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골프장에서 가장 예쁘게 조성된 양귀비 꽃밭에 이르렀습니다. 고객님께서는 어떻게 아셨는지 카트에 숨겨져 있던 비닐봉지를 꺼내셔서는 카트에 달려있는 배토통 안에 든 삽까지 꺼내 들고 화단으로 걸어들어가시는 거예요. "고객님, 화단에는 들어가시면 안돼요."
유유히 화단으로 들어가시는 고객님을 말리지만 들은 척 만 척입니다. 고객님께서는 들고 가신 삽으로 제법 크게 핀 양귀비 꽃 뿌리 속으로 푹 집어넣어 파내고는 비닐봉지에 싸서 나오시지 뭡니까. "고객님~" 순간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넓은 화단의 양귀비 한 뿌리 베어 간다 해도 티는 나지 않겠지만 댁에 가서 다시 심어본들 그 꽃이 예쁘게 느껴질까요?
"꽃이 너무 예쁘네." 좀 민망하신 듯 말씀하시지만 제 예감에는 절대 모자를 벗지 않으실 고객님이십니다. 아마 아주 넓은 이마를 가지고 계실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밭 바로 옆 토끼풀 속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으시며 제게 물어보십니다. "언니, 네잎클로버의 꽃말이 뭔 줄 알아?" 저는 대답했죠. "행운이잖아요." "그럼 세잎 클로버는?" "그건 행복 아니에요?" 그러자 고객님께서 하신 말씀은 "우린 하나의 행운을 찾으려고 수많은 행복을 짓밟아 버리지."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