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 개정안의 6월 임시국회 처리 무산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기득권 지키기의 전형이다. 국민이 위임한 금융감독 권한을 놓고 해당 부처는 물론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까지 가세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영역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어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던 한은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의 반발로 보류됐다. 소관 상임위(기획재정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친 법안이 보류된 것은 이례적이다. 8월 임시국회로 미룬다지만 또다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한은법 개정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위기 해결사로 부상한 한은에 책임에 걸맞은 권한을 주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금융회사 단독조사권을 주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금융위원회가 반발해 법안은 표류했다. 진통 끝에 소관 기재위를 거쳐 지난해 2월 법사위에 상정됐지만 진전이 없었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부실감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한은법 개정안이 다시 주목받았다. 그저께 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한은 등 3개 기관이 국회에 모여 한은의 단독조사권 대신 한은이 요구하면 금융감독원이 30일 이내에 응해야 한다는 공동조사권으로 합의했다. 조사 대상에 제2금융권도 포함시켰다. 이에 법사위가 개정안을 처리했고 본회의로 넘겼는데, 국회 정무위가 자신들을 무시했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 입법해야 할 국회 상임위가 소관 부처의 이익을 대변하고 나선 셈이다. 재정부와 한은의 소관 상임위는 기재위, 금융위 소관은 정무위다.
단독조사권이든 공동조사권이든 보다 중요한 것은 감독을 제대로 해 사고가 터지는 것을 막는 일이다. 그런데 감독기관은 계속 밥그릇 싸움이고, 이를 조정해야 할 국회까지 나서 갈등을 부추긴 셈이다. 따지고 보면 1년 넘게 계류돼 온 원래 개정안은 한은의 감독권이 더 센 것이었고 법사위가 나서 금융위 입장을 고려해 절충한 셈인데, 자신들은 몰랐다며 정무위가 발끈한 것이다.
감독 완장은 국민이 채워주는 것이며, 완장에는 권한 못지않게 책임이 뒤따른다. 힘센 부처와 국회가 서로 팔뚝 굵기를 자랑하는 사이 제2, 제3의 저축은행 사태가 곪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축은행 사태로 피해를 본 서민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