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 조해수 기자, 이윤재 기자]업체 간 자율경쟁으로 제품 가격 인하를 유도하자는 취지의 오픈 프라이스가 내달 1일, 시행 1년째를 맞지만 소비자 부담만 키운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품가격 인하와 알뜰 소비의 효과가 기대됐지만 오히려 소비자 주권 약화와 영세 상인에게 부담만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또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가 없어 소비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킨 채 대형 유통업체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제품 가격, 가게마다 달라요=27일 서울 시내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새우깡 가격 (90g)을 조사한 결과 이마트 미아점이 630원에 판매되고 있는 반면 훼미리마트(본사가격)는 900원으로 무려 270원이 높았다.
또 롯데백화점 본점과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동네슈퍼는 800원, 롯데슈퍼 동소문점은 690원으로 천차만별의 가격대를 나타났다.
여름에 즐겨먹는 빙과류도 큰 차이를 보였다. 메로나(빙그레 아이스크림ㆍ단품 90ml)의 경우 훼미리마트가 900원인 반면 정릉동 동네슈퍼는 450원으로 절반 가격에 머물었다. 이마트 미아점과 롯데슈퍼 동소문점은 각각 500원에 판매됐다.
빙과업체 한 고위 관계자는 "오픈 프라이스가 시행된 후 같은 대형마트라도 지역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며 "대형 유통업체에 가격이 자유로울 수 있는 '면죄부'를 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면죄부는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롯데 월드콘의 경우 출고가 인상이 없었지만 편의점들은 판매 가격을 1500원에서 1800원으로 올렸고, 대형마트도 900원에서 1200원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농심 새우깡의 경우 출고가가 7.7% 올랐지만 편의점과 대형마트의 판매 가격은 각각 12.5%, 16% 올랐다.
◇제조ㆍ유통업체 서로 네 탓=반면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들은 가격 인하를 못하는 이유로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유통업체가 마진을 남기면서 제조업체 탓만 한다는 주장이다.
제과업체 관계자는 "올 초부터 이어진 인플레이션으로 국민들은 물론 정부도 가격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서 "가격인상으로 실제 이득을 보는 것은 유통업체인데, 모든 화살은 제조업체에게 날아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국세청까지 나서서 제조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면서 "막대한 유통마진을 남기고 있는 유통업체들은 '오픈 프라이스'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사실상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국제 원ㆍ부자재 가격이 올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정부와 국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유통업체와는 달리 가격인상 폭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제과업체 관계자도 "유통마진을 줄여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쪽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전혀 개선된 것이 없다"며 "시행 1년의 성적표는 기껏해야 'B-'"라고 잘라 말했다.
반면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간에도 가격이 다 틀린데 어떻게 시장경쟁을 할 수 있겠냐"며 "대형마트는 많은 물량을 소화하는 판매채널이니 만큼 공급가격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이 서로 떠넘기는 사이 오픈 프라이스는 제 역할을 못한 채 물가상승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기현 한국소비자원 박사는 "대형마트 등에서는 가격표시 등이 잘 되고 있지만 중소형 슈퍼에서는 표시가 잘 안되고 있다"며 "판매점 간의 가격비교정보 제공이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 박사는 이어 "실질적으로 제조사와 유통업체가 가격상승 요인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용어설명>
오픈 프라이스-제조업체가 정하는 권장소비자 가격을 폐지하고 최종 판매업자(주로 유통업체)가 판매가격을 정하는 제도. 지난 7월 1일부터 의류 전 품목과 라면ㆍ과자ㆍ아이스크림ㆍ빙과류 등에 도입.
이초희 기자 cho77love@
조해수 기자 chs900@
이윤재 기자 gal-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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